대장내시경과 조직 검사
5월 16일 대장내시경(집 근처 000 내과)
: 본병원 의료 파업으로 외부에서 검사 후 결과 제출
대장내시경 검사가 끝난 뒤, 의사 선생님은 진료실 컴퓨터 화면에 내시경 결과를 띄우고 내가 앉기를 기다리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보이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지난 2월,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 봤던 그 내시경 화면이 떠올랐다. 분명 붉으스레 한 암 덩어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를 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화면에 보이는 것은 뭔가요?
암 덩어리는 어디에 있나요? “
내가 조심스레 묻자 선생님은 모니터를 한 번 더 확인하시고는 늘 그렇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암이 사라졌네요. 안 보입니다.”
“네? 그럴 리가요? 분명히 3월 27일 방사선 CT 모의치료 때도 암이 분명히 있었는데요. 울퉁불퉁했던 모양에서 매끈한 감자처럼요.”
“암이 있었던 흔적만 남겼네요. 이 부위에서 조직검사는 했고요.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겠지만 제 생각에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가 좋을 것 같아요. “
분명 입꼬리를 올려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그저 숨을 들이마신 채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은 멍했고 좀 전에 들었던 선생님 말씀이 자꾸 되감아졌다. 너무나 담담하게 전해진 말이어서 나도 그저 담담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암이 사라졌습니다’ 그 짧은 문장이 진료실에 길게 머물며 생각을 멈춰 세웠다.
화면 속 깨끗한 직장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말끔했다. 직장벽에 붙어 있어야 할 둥글둥글한 감자는 사라졌다. 갑자기 너무 깨끗한 내 직장이 믿기지 않아 자꾸만 화면을 들여다봤다. 낯설었다. 선생님의 차분한 설명과 또렷한 영상 사이에서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런 경우 ‘임상적 완전 관해’라고 해요. 내시경상으로 암이 보이지 않는 상태,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암이 없는 거죠. MRI와 CT 검사에서도 암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병리적 완전 관해’라고 해요.
나흘 뒤 본병원에서 수술 전 검사를 받게 될 텐데, 그 결과까지 괜찮다면 ‘완전 관해’ 상태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모니터에 의학용어를 치면서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완전 관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대장항문외과 주치의 선생님은 당연히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거예요. 암이니까요. 제가 예상하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하셨던 대로 수술을 준비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완전 관해일지도 모른다는 그 말 한마디에 조심스레 희망이 생겼다. 암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수술은 아마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24.2.7 직장암 진단 시 : +++ 내과
-왼쪽은 조직 검사 후
2024.5.16 : 000 내과
-암은 사라지고 붉은 흔적만 남아 있다.
아래 사진은 그곳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장면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회사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덤덤한 목소리였다.
“다음 주 수술 전 검사 결과만 잘 나오면 되겠네.
나는 원래부터 이럴 줄 알았어.”
“저녁에 우리 파티할까 ”
“아니야. 지금까지의 흐름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해.
기쁨은 유지하되 일상은 그대로. “
“알았어. 일찍 들어와.”
흔들림 없는 목소리, 어쩜 이렇게 차분할 수 있는지.
아직 남은 검사들이 있었고, 정말 기뻐해도 될 시점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했기에 감정을 한 걸음 물러세우려고 했다. 남편은 원래 침착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나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그를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의 평온한 모습에 나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차분해지려고 했다.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눴다.
“거봐. 엄마는 잘 해낼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암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지? 기적 같은 일이 엄마한테 일어났네. “
둘째가 신이 나서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기적은 아니야. 정확하게 과학이야. 싸이언스!”
“으이그, 네네네 아빠는 극강의 대문자 T야. “
첫째가 웃으며 말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없다’는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좋은 예감이라는 선생님의 말도, 화면 속 말끔한 장면도 분명히 기억나는데도 말이다. 나는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속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과 아닐 거라는 기대, 그리고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로 일주일을 보냈다.
“예상대로 조직 검사 결과에서도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네요. 다행입니다. 다음 주에 서울에서 검사 잘 받으시고, 수술도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지금 몸 상태도 좋아서 회복도 순조로울 거예요.”
“혹시 검사 결과가 좋아서 수술을 안 하게 되는 건…... 불가능할까요? 가능성은 20-30%라고 했지만 저는 임시장루(인공항문)를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거든요.
수술 후 삶의 질도 그렇고...... “
“주치의 선생님은 아마 수술을 권하실 겁니다. 안전하게 가려면 수술은 필요하다고 하실 것 같아요.
임시 장루를 하게 된다면 어차피 임시니까 몇 개월 고생하면 되는데, 직장암은 특히 수술 후에 삶의 질의 문제가 있죠. 아무래도 직장의 길이가 짧아지니 대변을 저장하고 배출하는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너무 미리 걱정 마시고 그동안 준비해 오신 대로 하시는 데 좋겠어요. “
의사 선생님은 괜한 기대는 오히려 더 큰 실망이 될 수 있다며, 수술은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리해 두는 게 좋겠다고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악성 세포 없음
-임상적인 판단이 필요
4일 후 서울 병원에서의 수술 전 검사, 그 결과를 기대해 보기로 했다. 완전 관해라는 결과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의사 선생님께 드릴 답변을 준비하면서 마음도 정리를 했다.
어느 쪽이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저는 수술을 안 하고 싶습니다
아, 그래도 수술을 꼭 해야 한다고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