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할지, 추적 검사를 하며 지켜볼지.
이 선택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병원에서는 월요일까지 결정을 알려달라고 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주말을 포함해 단 3일.
단순히 치료 방법을 고르는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삶, 내 일상과 존재 방식까지 달라질 수 있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이었다.
‘암’이라는 이름 아래 내리는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무게감이 희망보다 걱정을 앞세웠고,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 갔다.
조급한 마음 탓인지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월요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고민됐던 것은 ‘삶의 질’이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짧아진 직장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그 이후의 일상까지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직장의 길이가 짧아지면 배변 활동에 여러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예상치 못한 배변 문제나 수술로 인한 골반 주변 장기들의 변화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단순히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깊은 영역이었다. 만약 그게 내게 주어진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고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정말 피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지금의 일상과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만약 암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연히 원래 계획대로 수술을 할 것이고, 그로 인한 변화와 어려움 역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치료 효과가 아주 좋았고 그래서 지금 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절망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내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방법을 끝까지 고민하고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재발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 좋은 치료 결과를 앞에 두고 과연 수술이 꼭 필요한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길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암’이라는 이름 아래 놓여 있었기에 더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암 환자가 된 이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암에 대해 공부해 왔다.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이해해야 올바른 선택과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직장암이라는 병과 그 치료에 집중했다면, 수술을 앞두고는 그 이후의 삶과 변화에 더 깊이 시선을 두게 되었다.
병원에서 말하는 ‘수술이 잘 되었다’는 것은 기술적인 성공을 뜻한다. 직장과 결장의 일부를 잘라내고 잘 연결되면 그걸로 수술은 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의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환자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다. 수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환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건 단순히 수술이 잘되느냐가 아니라 그 수술 이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였다.
어쩌면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중요한 선택을 좀 더 신중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무엇보다 남편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은 불안해서 결정을 미룬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선택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준비한 과정이었다.
남편과 함께 앞으로의 삶, 몸의 변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깊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내 생각을 존중해 주었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까지 차분히 짚어주었다.
일요일 저녁, 남편과 두 딸에게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전했다.
“나, 수술 안 하려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잘 관리하면서 지켜보는 쪽을 선택할게. 달라질 건 없어. 음식 관리, 운동, 마음과 수면 관리, 암 공부 등등,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계속하면서 살면 돼.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잘할 거야. “
남편은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잘 생각했어. 자기 몸이고, 자기 삶이니까 자기 선택을 존중해. 나도 사실 수술 안 하기를 바랐어.”
두 딸도 늘 그렇듯 담담하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엄마는 치료도 잘 받았고, 결과도 좋았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잘할 거라고 믿어. 정말 다행이야.”
“엄마라면 잘할 거야. 당연히 해낼 수 있어. 내가 처음부터 걱정 안 된다고 했잖아.”
단순하지만 마음 깊이 울리는 말들이었다.
가족이 보내는 따뜻한 믿음과 응원이 내 결정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 수없이 되묻던 질문들 끝에 도달한 이 선택이 결코 흔들림 없는 나의 의지라는 것을. 나는 내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잘 해온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랐다. 이 선택이 후회로 남지 않기를.
아니, 후회하지 않겠다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을 지탱해 줄 가장 단단한 힘이었다. 처음이라 낯설고, 때로는 불안할 수 있는 길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나는 앞으로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며칠 동안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생각들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듯했다.
‘지금까지가 끝이 아니라,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묘하게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선택한 길, 이제는 그 길 위에서 ‘보이지 않는 암’과 함께 어떻게 잘 살아갈지를 차근히 고민하면 된다. 재발에 대한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조차도 품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지금의 나답고, 앞으로의 나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럼 나, 지금까지는 암을 체험한 거야?"
남편과 딸들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가볍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
6월 3일 월요일 아침, 서울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 지방에 사는데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꼭 입원 준비를 하고 병원에 가야 할까요? 전화로 주치의 선생님께 제 결정을 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이후의 검사 일정에 대한 것도 알고 싶고요."
“제가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1시간 내로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본인은 수술방 담당 간호사라고 하시면서 아주 친절하고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로부터 30분 후 전화가 왔다.
“교수님께 환자분이 수술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말씀드렸어요. 당장 PET CT를 찍어보자고 하시네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만큼 지금 상황을 더 명확하게 확인하고, 조금 더 안심하면서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급하게 내일 검사를 예약 잡으라고 하셨고요. 환자분 내일 병원에 오실 수 있으세요?"
수술 날짜가 지나서 검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주치의 선생님은 빠르게 일을 진행시키셨다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무조건 수술을 권하거나 설득하기보다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환자의 입장에서 안심하면서 지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따뜻한 조언을 건네주시고, 현실적인 대안도 빠르게 마련해 주셨다.
결국 수술 예정일은 PET-CT 검사일로 바뀌었다.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을 확인하러 가는 날이었다. 서울의 풍경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을 전혀 다른 하루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침 8시, 병원으로 출발 직전에 희망을 담아 V
6월 4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며칠 전 주치의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자꾸 떠올랐다.
“이 정도 결과라면 PET-CT에서도 암이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 한마디가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이번 검사를 계기로 앞으로는 정말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은 덜 불안하게 지켜보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와 설렘이 피어올랐다. 눈에 보이는 암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내게 찾아왔다는 게 새삼 믿기지 않았다.
PET CT 검사는 포도당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시킨 후, 그 물질을 몸에 주입해 대사가 활발한 부위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대사 활동이 훨씬 활발하고 포도당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성질을 이용해 암이 있는 부위를 확인할 수 있다. 염증이 있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탈의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 방사성 약품을 정맥에 주입하러 들어갔다. 방사선사 선생님들의 모습은 마치 핵실험실에서 근무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을 투여받은 후에는 침대 하나만 놓인 조용한 방에서 누워 약물이 몸에 흡수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움직이지 말고 편안히 누워 있으라는 안내에 따라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끗한 결과만을 기대하며 쉬었다. 그리고 1시간쯤 후에
“000님, 일어나셔서 옆에 있는 화장실로 이동하셔서 소변을 보신 후 촬영실로 들어오세요.”
방송 안내를 따라 이동한 후 촬영실에 들어가 편안히 누운 상태로 약 10분? 정도 검사를 받았다.
오늘 검사는 내가 선택한 길을 확인하고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긴장보다는 기대가 조금 더 컸고, 몸보다 마음이 더 가벼웠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를 품고 병원을 나섰다.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이제 3주 후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혹시나,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놓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이번에도 가족들은 나의 결정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마포에 있는 메디람 한방병원(암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이번 입원의 목표는 얼마 전 조직검사에서 남아 있다고 했던 염증을 완화하고, 몸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구자일 원장님은 내 상황에 맞춰 고압산소치료를 매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해주셨고, 면역주사만 유지한 채 경구용 면역증강제는 복용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처음으로 고주파 온열암치료 BSD 2000도 주 2회 추가되었다.
마치 결승선을 눈앞에 둔 단거리 주자가 마지막 힘을 끌어올리듯이 나 역시 회복을 향해 집중과 속도를 더해갔다.
“PET CT 검사 결과도 좋게 나올 것 같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에서 원발암 부위에 암이 없었고 염증 정도만 있다고 했으니까요. 입원해 있는 동안 치료 잘 받으시고 휴식을 취하세요. 잘하실 수 있을 거라는 거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원장님의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그 말씀에 다시 한번 내 선택을 믿게 되었고, 그 믿음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졌다.
드디어 PET CT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진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길게 느껴졌던 기다림도 이제 끝이 보였다. 기대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차분히 현실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