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01.
아이의 태명을 초록이라 지은 것은 봄이어서가 아니었다. 세상의 초록 초록한 것을 많이 보고 태어나라는 의미도 아니었다.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 그래서 내 태몽은 뭐였냐고.”
“없다니까?”
학교에서 친구들 모두 태몽 이야기를 했다. 누구는 아주 큰 나무에 복숭아가 열렸는데 탐스러웠다고. 황금 거북이를 주운 꿈도 있었고, 물고기가 아빠의 발을 물었다는 꿈도 있었다. 처음엔 돌아가며 이야기하다 모두 본인 꿈이 더 좋은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서 나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누구도 내게 태몽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물은 것이다. 내 태몽에 대해서. 진짜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거냐는 물음을 던지면서.
“애들은 다 있는데 왜 나만 태몽이 없어. 그럼 나는 가서 없다고 해?”
“그럼 들어봐, 영주야.”
나의 질문에 지쳤는지 엄마가 빨래를 개다 내게 운을 띄운다.
“어느 날 숲에서 길을 잃은 거야. 그런데 바람 소리가 마치 음악 같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노랫말 같이 들려서 그 길을 신나게 걷다 연못 하나를 찾은 거야.”
“어! 그래서?”
“그 연못에!”
“연못에!”
“양이 있는 거지.”
“양?”
“너 양띠잖아. 큭큭”
“아 엄마 진짜 별로야.”
엄마는 내 반응이 웃기다는 듯 한참 웃었다. 그러고는 태몽은 없지만, 태명은 있었다고 말했다. 초록이. 그렇게 불렀다 했다. 나는 영주 이전에 초록이었다. 남들은 다 있는 태몽이 나만 없는 것 같아 서운했지만, 태명은 꽤 맘에 들었다. 그래서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초록이라고 지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고작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손가락을 걸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폐결핵을 앓았다. 지금은 약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인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병원에 잠시 다녀온다던 엄마는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이주가 지나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졸업식에서 예쁜 양장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오랫동안 엄마의 장롱 안에 있던 아이보리색 투피스였다. 퀘퀘 묵은 냄새가 났지만 그날 엄마는 아주 예뻤다. 칙칙한 겨울 졸업식장에서 신부처럼 새하얀 옷을 입은 엄마만 빛이 났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엄마의 손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엄마의 입원이 세 번째쯤 되었을까. 나는 병원에 가는 엄마를 꼭 안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을 열넷에 알았다.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남들은 다 엄마가 해주는데, 나는 혼자 세탁기를 돌릴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무에게도 자랑하지는 못했다. 자랑이 아닌 걸 알았으니까. 교복을 다리는 방법도 익혔다. 쭈글쭈글한 교복을 입고 등교했더니 같은 반 남자아이가 엄마 없는 아이냐고 놀렸다. 진짜 집에 엄마가 없는 걸 알고 한 이야기인 줄 알고 마음이 덜컥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최대한 옷을 다려 입고 학교에 갔다.
엄마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사랑한, 그리고 아빠가 사랑한, 엄마는 죽었다. 병은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도 쉽게 빼앗아 가는구나. 이렇게도 빨리 앗아가는구나. 상복을 입었다. 모두 안쓰럽다 한 마디씩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 손을 부여잡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불쌍하다며 혀를 차는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불쌍하진 않았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는 매일 술을 먹었다. 저녁에 집에 가면 늘 술 취한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주는 마른 멸치와 고추장이었다. 거실 테이블을 두고도 아빠는 바닥에 앉아서 멸치를 주워 먹었다. 그러고는 내게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렇게 예뻤다고. 엄마가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나는 그건 스토커잖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아빠는 매일 그 자리에서 멸치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쉽게 웃었다. 그리고 쉽게 울었다. 1병을 마시면 웃고, 2병을 마시면 울었다. 나는 아빠가 두 번째 병을 마실 때는 꼭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가 엄마를 따라갔을 때는, 그때에는.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도 알아. 그런데 나는? 나는 전혀 사랑하지 않았어? 나도 있었잖아. 엄마와 아빠가 낳은 내가 있었잖아. 보통은 자식을 사랑의 결실이라 하던데, 어떻게 결실을 두고 가지? 엄마가 남기고 간 우리끼리 똘똘 뭉쳐 이 세상을 살아낼 수는 없었어? 나는 아빠의 발인날 그렇게 목놓아 울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이 슬픔이었다면 아빠의 장례식에서 눈물은 원망이었다.
이모 집에는 열여섯에 왔다. 엄마를 닮은 이모와, 이모부의 딸. 아니, 객식구가 되었다. 이모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가끔 밥을 먹을 때 소주 한잔을 따라 마시는 게 다였다. 한 잔을 마신 뒤 열 잔을 마신 것 같은 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나와 영현에게 용돈을 주었다. 용돈을 주려고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영현은 가끔 이모부가 술 마실 때를 기다렸다. 영현은 이모와 이모부의 딸이었는데 사랑받고 큰 만큼 모나지 않은 아이였다. 이름처럼 둥근 아이. 이름에 이응이 많이 들어가서 저렇게 둥근가 생각했다. 이왕이면 내 이름도 영하, 영인, 영아 뭐 그런 걸로 지어주지 싶었다. 이미 없는 엄마와 아빠를 또 원망했다.
이모는 어린 내가 겪은 일들이 안쓰러웠는지 이유 없이 가끔 날 꼭 안았다. 그러면 영현이 “나도 나도!” 하며 달려와 셋이 안았다. 나는 두 팔로 이 모녀를 한 번도 감싸 안은 적 없지만 둘은 나를 언제나 꼭 안았다. 이모도, 이모부도, 영현도 날 가족이라 칭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를 거두어 준 것은 고맙지만, 성인이 되면 이 집을 꼭 떠나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