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정호를 만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과끼리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그런 걸 과팅이라고 했었던가. 경영학과라고 해서, 거기선 뭘 배워요? 재미있어요?라는 내 물음에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 중에 그나마 가치 있는 것들이요,라고 정호는 대답했다. 그리고 자리를 파하려 하자 얼빠진 얼굴로 내가 좋다 했다. 그 얼빠진 얼굴이 꽤나 맘에 들었다. 우리는 둘이 나와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다.
정호는 지방에서 유학 온 도련님이었다. 덕분에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집이라고 하기엔 좁고, 방이라고 하기엔 넓었다. 얼빠진 얼굴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 방에서 정호의 어머니가 때마다 보내주시는 김치로 김치볶음밥을 해서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정호가 어울리지도 않는 기타를 과방에서 가져와 이게 F코드라며 알려주기도 했고, 정호의 반주에 내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정호가 수업을 가고 혼자 공강인 날이면 책장을 구경했다. 세로로 긴 책장에 나라면 평생 읽지도 않을 것 같은 경영 관련 도서들이 꽂혀있었다. 마치 사람한테 훈계를 하듯이 지어진 책 이름들이 건방지고, 재밌게 느껴졌다. 나는 정호의 책을 빼서 첫 장만 읽고 다른 쪽에 꽂아 놓는 것을 좋아했다. 정호는 자신의 책이 뒤죽박죽 꽂히게 되어도 몰랐다. 우리가 그 집을 나올 때까지 몰랐다.
정호 덕에 이모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친구네 집에서 잠깐 동안 같이 살 게 되었다며 아예 가지 않았다. 반찬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준다는 이모의 말에 나는 다음번에 집에 가면 가져오겠다고 그렇게 몇 년을 미뤘다. 다음 번은, 다음번이 되고, 또 다음번이 되었다. 내가 이모의 집에 가는 것은 엄마와 아빠의 제사, 그리고 이모나 이모부 생신날이 다였다.
영현과는 대학에 들어온 뒤 자주 보지 못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대학생이 뭐 그리 바쁠까. 매일 술만 먹는데. 영현을 보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미안해서였다.
나이가 들며 영현에게 나는 미안했다. 같이 치킨을 먹으면 내 앞에 먼저 닭다리를 놓아주는 이모를 보며 영현의 눈치를 보았다. 영현은 이런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번째로 전해진 닭다리를 잘도 먹었다. 언니, 너무 맛있지 하면서. 너에게 오롯이 갈 사랑을 내가 뺏은 건 아닐까, 나와 나눠서 네가 혹시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될까 무서웠다. 그래서 챙김을 더 받을수록 나는 이 집의 객식구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다. 일부러 더, 더. 호적상으로는 딸이지만, 그저 고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조카를 당연하게 받아준 착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영현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자신도 대학에 들어갔다며, 성인이 된 것에 신나 해 학교 앞에서 만나 술을 사줬다. 포장마차에서 닭발에 소주를 먹는 게 소원이라던 영현을 데리고 닭발과 소주 두병을 먹었다. 빨개진 입술을 하고 영현은 내게 말했다.
“언니는, 나가서 사니까 좋아?”
나는 대답 없이 술 한잔을 더 마셨다.
“나는 엄마 아빠가 바빠서 크는 내내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 그런데 언니가 와서 좋았어.”
나는 이번에도 대답 없이 어묵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언니가 나가니까 또 집이 조용해. 적막하달까.”
내가 있으면 영현의 목소리는 한 층 더 커졌다. 자신의 방보다 내 방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고 이모는 입이 여럿이라며 반찬의 가짓수를 늘렸다. 이모부는 술을 마시고는 자꾸 지갑을 열었다. 우리는 부단히 가족이 되려고 애썼다. 모두 열심히 노력했는데 가족이 되지 못한 것은 나였다. 웃지 않았지만 웃고 있었고,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 했고, 잊지 않았지만 잊었다 했고, 필요했지만 필요 없다 했다.
애써 노력하는 것이 가족 일리가 없다 생각했다. 가족은 그냥 있는 대로 사는 것이 가족 아닌가. 이모와 이모부, 영현은 내게 너무나도 노력했다. 가끔 그것이 헛구역질이 났다. 실제로 학생 때 밖에서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음식을 모두 게워낸 적이 있다. 그날은 영현의 생일날이었고, 음식점에서 나오는 길에 영현의 친구와 부모님을 마주쳤다. 영현은 나를 언니라고 소개하며 팔짱을 꼈다. 마치 자랑하듯 한 행동이었지만 그 말에 친구는 “네가 언니가 있었어?”라고 했고, 그 친구의 부모님들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속이 좋지 않았다. 결국 비싼 음식을 먹고 속을 다 게워내었다. 그날은 영현을 조금 미워했다. 그냥 아무런 인사 없이 지나갔으면 그런 소리를 안 들어도 됐을 텐데. 그런 눈빛을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네 친언니가 아니야. 알고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한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영현은 지금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언니가 있어서 좋았다고, 언니가 없으니 외롭다고.
나는 영현이 취한 틈을 타 물었다.
“내가 싫은 적은 없었어?”
손목으로 얼굴을 겨우 받친 채로, 대답했다.
“응.”
“한 번도?”
“응. 한 번도. 언니는 있었어?”
영현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있었구나.”
“어릴 적이야.”
“나는 언니, 언니가 내 언니라서 좋아. 그냥 좋아. 가족은 원래 그런 거야.”
그날 우리는 둘이 소주 3병을 마셨다. 영현은 집으로 다시 보낼 수도 없이 취했다. 갈지자로 걷는 영현을 어쩔 수 없이 둘러업고 정호의 방까지 데려왔다. 문을 열고 놀란 정호가 급하게 이불을 깐 뒤 영현을 눕혔다. 그리고는 보일러 온도를 더 높였다.
나는 이불 밑에 다리를 넣은 채 누워있는 영현을 보았다. 어릴 적 말고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소녀 같던 얼굴이 숙녀가 되어있었다. 많이 컸네. 진한 눈썹을 손으로 따라 만졌다. 그리고 내 눈썹도 한번 만졌다. 여자치고는 둘 다 진한 눈썹이었다.
옆에 온 정호가 영현이 깰까 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동생.”
정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정호를 좋아하는 세 번째 이유였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궁금해도 묻지 않는 것. 정호는 그것을 예의라고 말했다. 늘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정호. 나는 영현이 돌아간 뒤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외동이라 말했던 내게 동생이 있는 이유를. 정호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안쓰럽다거나 불쌍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잘 견뎌온 내가 멋있다고 했다. 멋있다. 정호의 입을 통하니 내 인생이 멋있어졌다. 경영학과에서는 이런 걸 배우는 건가 싶었다. 쓸데없는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걸 찾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는 것 인가. 안겨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호가 졸업을 하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정호에게 물었다.
“너 나 안 사랑해?”
“사랑해!”
“근데 왜 결혼하자고 안 해?”
“어? 하자!”
정말로 이 네 문장에 우리는 결혼을 결정했다. 도망치고 싶어서 결혼이 필요했던 나와, 그저 좋아하는 여자가 하는 말이니까 결혼을 하자 했던 정호.
오랜만에 집에 갔다. 집 앞 골목길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골랐다. 여러 종류의 과일이 들어있는 과일바구니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집에 가는데 과일바구니는 아닌가 싶어 참외와 복숭아를 봉지에 담아 양쪽 손에 들었다. 현관문 앞에 서니 잔칫날처럼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 왔어요.”
내 말에 영현이 달려와 내 손에 있는 과일이 든 봉지를 가져갔다. 뒤집개를 든 채 이모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자 영현도 껴안았다.
“다했어. 조금만 기다려. 배고프지.”
“아니요. 괜찮아요.”
영현이 손으로 호박전을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었다.
“어쩐 일로 집에 온다 했어?”
“그냥.”
일일드라마를 할 시간쯤 되니 이모부도 와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넷이 밥을 먹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한 것은 제사를 제외하고 이모, 이모부 생신 때가 다였다. 그마저도 지난 이모부 생신 때는 내가 깜빡하고 정호와 여행을 가서 오지 못했다. 아예 잊어버려 죄송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잔칫상처럼 차려진 음식들의 가짓수를 영현이 손으로 세며 언니 그냥 집에 다시 와서 살아라,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잡채를 세 번째 집어 먹었다. 이모가 잡채를 많이 했다며 싸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 했다.
“결혼, 하려고요.”
이모와 이모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드디어 우리도 볼 수 있는 거네, 하며 신나 했다. 주름진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고 입가에는 미소를 뗬다.
“그래서 말인데, 상견례요. 이모랑 이모부가 나오실 수 있는지..”
“언니, 무슨 말이 그래. 당연히 엄마, 아빠가 나가야지.”
영현이 내게 핀잔을 줬다. 이모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우리가 최대한 잘해볼게, 했다. 마치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처럼 다짐했다. 그 말이 우스워 나와 영현은 조금 웃었다. 무엇을 잘해본다는 것인가. 결혼은 내가 하는데.
잡채를 통에 담는 이모 옆에 서서 나는 말을 꺼냈다. 정호는 알지만 정호의 부모님들은 모르신다고. 어차피 호적도 다 옮겨져 있고, 시골분들이라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아하실 것은 알지만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모는 잡채를 담은 통의 뚜껑을 닿지 않고 잠시 손을 멈췄다 이내 다시 딸깍 소리를 내며 닫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드디어 네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네.”
이모부가 어딘가에서 정종 한 병을 꺼내 왔다. 이런 날은 축하를 해야 한다면서 신이 나 술병을 땄다. 이모 빼고 나와 영현도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이모부는 우리에게 용돈을 주었다. 꼭 열여섯 살 때처럼.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상견례는 삼청동의 한정식집에서 했다. 한옥으로 되어있는 조용한 분위기의 음식점이었다. 곱게 차려입은 이모와 이모부가 먼저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와 정호의 부모님께서 도착했다. 정호에게 형제가 없어 영현은 부르지 않았다. 나도 상견례라는 거 구경하고 싶은데, 하고 말하는 영현에게 대신 정호와 같이 맛있는 밥을 사준다 약속하였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날씨가 덥죠, 에서 시작하여 정호 얘가 얼마나 말썽꾸러기였는지, 까지 나왔다. 아까부터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이 해파리냉채를 먹는 것도 이제 거의 끝난 것이다. 정호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어쩜 저렇게 잘 키우셨을까요. 꽃처럼 환하고 예쁘고, 저는 영주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 말에 이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꽃처럼 환하게 크지 않았으니 그 말이 이모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아끼던 이모부가 말했다.
“이 사람 영주 가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해주겠다고, 어찌나 난리였던지. 저희가 그렇게 키웠습니다. 가르친다고 가르쳤지만 부족한 게 많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모부가 나에 대해서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정말로 이모가 나를 낳은 것처럼 이모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와 이모는 사이가 좋은 자매였다. 사남매 중에 첫째와 셋째였는데 둘이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둘째 이모는 그런 둘 사이를 질투해 매번 고무줄도 끊고, 이모를 밀치고 달아나기도 했다고 들었다. 엄마가 날 낳았을 때 이모는 직장에서 전화를 받고 퇴근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할머니가 해준 미역국을 매일 엄마 집으로 날랐다. 내가 크는 내내 날 예뻐했다. 영현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 제일 슬퍼했던 것도 이모였다. 아마 나보다 더 슬펐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은 나와 함께 아빠를 원망했다. 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나를 꼭 안은채 나 대신 아빠를 원망했다. 그러고는 이모가 지켜줄게, 하며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정호와 함께 정호 부모님을 배웅하고 이모와 이모부의 배웅을 하러 다시 주차장에 왔다. 이모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내게 손바닥을 펼쳤다.
“엄마 대행 성공!”
언제나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사람. 내가 바라는 만큼 크지 않아도, 바라는 만큼 대답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내가 한 번도 엄마라 부르지 않아도 엄마 자리를 대신해주는 사람, 이모였다. 나는 이모의 손에 내 손을 가져갔다. 우리는 짝 소리가 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