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03

part1. 여름

by 오 지영

part1. 여름


<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동사를 나열한다. 물어본다, 가져간다, 든다, 감싸다, 닦는다, 인사한다, 내민다, 돌린다. 그렇게 동사를 나열하다 보면 문장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러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민이는 réconfort의 바리스타로 평일 오픈 시간부터 3시까지 커피를 만든다. 그 이후에는 제일 외진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SF소설을 몇 년째 쓰고 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졸업 후 글 쓰는 것에만 매달렸다. 이제는 제대로 된 글로 인정도 받고, 인생에 어떤 수식어든 붙어야 하는 나이인데 그러지 못해 조바심이 나곤 했다.


연애기간은 10년. 7년은 따로, 3년은 동거를 했다. 하지만 각자 살던 시간보다 동거를 한 3년 동안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았다. 동거는 작은 습관부터 모든 버릇, 알고 싶지 않은 행동까지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누군가가 동거에 대해 물으면 민이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공유하다 모든 것을 나누는 행위라고.


애초에 동거를 시작할 때 동거가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먼저 한 것은 준이였지만 민이 역시 동의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공간에 나머지 한 명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신혼집처럼 새 공간을 마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함께 꾸렸다. 나중에 헤어지고 한 사람이 그 공간에서 나가면 나머지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는 준이의 말이 그때는 꽤 로맨틱하게 들렸다.


바라본다, 웃는다, 안는다, 쓸어 넘긴다, 만진다, 잡는다, 아리다, 준이를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동사들을 나열할 수 있었다. 내 안의 모든 단어를 준이가 만들었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준이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내 글 역시 정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전부와 헤어졌다. 10년이란 연애기간은 한순간에 추억이 되었다. 민이와 준이는 헤어질 때 누가 무엇을 가져갈지 모든 것을 의논했다. 첫 번째 대상은 고양이 마틸다였다. 함께 길에서 데려왔고, 같이 치료했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같이 정을 주었다. 동시에 우리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했다. 우리는 마틸다를 두고 서로 지지 않으려 한참 언쟁했다.


그다음에는 냄비부터 컵, 고양이 무늬의 러그, 이케아 선반. 모든 것을 다 나눠야 했다. 컵 하나도 쌍으로 가져가냐, 각자 가져가냐, 하나하나 정하느라 무지하게 힘들었다. 독한 놈. 다행히 준이 말대로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 따위의 일은 줄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피곤했다. 둘 다 새 집을 구해야 했으며, 들어올 때보다 짐은 2배로 늘어났기에 정리해야 할 짐은 더 많았다.


본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가족과 떨어져 산 것에 익숙해진 민이는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스트레스였다. 문을 벌컥벌컥 열고 먹을 것을 들이미는 엄마나 밖에서 들리는 아빠의 TV 소리까지 그 모든 게 성가셨다. 그러던 중 소윤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소윤은 준이의 형수다. 그러니까 헤어진 남자 친구의 형수. 준이가 바쁜 주말이면 민이는 소윤의 카페에 가 일을 도와주기도, 놀고 가기도 했다. 그런 민이를 소윤은 예뻐했고, 자주 안부를 물었다. 요즘 통 연락이 없자 소윤이 먼저 연락한 것이다. 잘 지내냐는 안부에 헤어짐을 말하니 소윤은 양양에 오지 않겠냐 제안했다. 용돈벌이로 수많은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과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던 민이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헤어진 남자 친구의 형수지만 다행히 준이의 직장은 서울이고 이직을 하고 더 바빠진 것 같으니 마주칠 일도 딱히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은 이 집을 나가고 싶었다. 민이는 소윤의 제안에 바로 알겠다 답하고 카페 근처 작은 원룸을 알아봤다.


민이는 핸드드립을 내리는 공간에 있는 기역 자로 된 바 공간을 제일 좋아했다. 단골손님들은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 민이 역시 손님이 없을 때면 드립을 한잔 내려 바에 걸 터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우리 예가체프로 2잔이요!”

“말 안 해도 알죠.”


단골손님이 오면 민이는 더 신이 났다. 커피를 내리며 안부를 주고받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들은 민이의 글에 영감이 되기도, 하루의 유일한 웃음이 되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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