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04

part1. 여름

by 오 지영

part1. 여름


<희나>


행복은 무엇일까. 나이에 따라 무언가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30대가 되고 나서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그것이 행복이었다. 너무 기쁘거나 또 너무 슬프지도 않은 평범한 날로 이어지는 일상.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고 맥주 한 캔을 먹고 잠에 드는 삶. 이런 생각을 서른셋쯤 처음 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 보니 서른일곱이 되어있었다.


희나는 지난달 상견례를 했다. 서로의 아들 딸에게 잘 키우셨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부족해도 우리 아이 예쁘게 봐달라는 형식적인 인사로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9월 말로 예식장을 예약했고 이제 남은 것은 청첩장이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남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많이도 들어왔지만 어떻게 이렇게도 도움이 안 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결혼 준비를 끝냈다.


수호와 다툼의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별 것 아니었기에 생각도 잘 나지 않았다. 무언가 때문에 싸웠고,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났다. 이 주째로 넘어가려고 할 때쯤, 수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산책할래?”


희나는 그래,라고 답하고 서둘러 옷장에서 카디건을 챙겨 입고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리고, 엘리베이터 앞이 아닌 저 멀리 밖에 서있는 수호가 보였다. 수호는 늘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기에 그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색하게 웃으며 오랜만이라 말하니 수호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수호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분명 그 생각들을 들었는데, 분명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혼을 세 달 앞두고 수호는 희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내가 본인을 사랑하지 않아서. 수호의 말을 빌리자면 희나는 누군가를 아끼지도,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 동안 수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떠난다고 했다. 희나는 아무 말 없이 듣다 수호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한 것은 뭐야?”

“고마움.”


수호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 수호는 희나의 감정을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고작 2년이지만 수호가 그렇다면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울지 않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은 그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이별을 예상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나이답게, 또 어른답게 헤어졌다. 양쪽 집안에 잘 설명드리고,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만나서 하자고 했다. 건강 챙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호와는 우희의 소개로 만났다. 곁에 있는 사람이 몇 없는데 그 몇 중의 하나인 우희가 만나보라 권해서였다. 사실 모든 게 귀찮았지만 라디오 PD라는 직업이 희나를 솔깃하게 했다. 희나는 오랫동안 불면을 겪었다. 혼자 깨어있는 밤 시간에 유일하게 찾은 낙이라고는 라디오를 틀어놓는 것이었다. 그 늦은 시간에도 깨어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위안이 되었다. 자정이 되면 시인이 사연을 읽어주고 시를 말하는 프로를 희나는 제일 자주 들었다. 희나가 듣던 프로는 아니었지만 라디오 PD라는 직업에 소개를 받기로 했다. 수호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수호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크지 않은 사람. 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 만난 지 세 번째 되었을 때 희나는 수호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리 비슷하네요.”


헤어질 때야 안 사실이지만 수호는 희나와 비슷하지 않다고 했다. 희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수호는 열심히 무던한 척을 했고,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희나의 사랑을 바라다 지쳐버린 것 같다 했다. 희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수호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수호의 말을 곱씹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이키지 못한다면 제일 먼저 해 야할 일은 해결하는 것이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희나는 본론부터 말했다. 결혼을 못할 것 같다고 하니 엄마는 이유를 물었고, 헤어졌다 답했다. 아빠에게 본인이 설명한다는 대답으로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엄마가 같은 여자인 것이 이토록 고마울 수 없었다. 엄마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끔 이렇게 큰 일인 경우에는 해결사로 제일 앞에 서곤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하면 집안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아마 수호를 설득해서 결혼을 치르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힘이 내게는 없었다. 서둘러 다음 주 일정을 확인했다. 다행히 쉬는 날이 2일이 붙어 있었고, 점장님께 급한 용무가 있어 2일 더 휴가를 내고 싶다 했다. 희나로써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점장님은 별일 아닌 거지, 라 물으며 매장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휴가를 승인해주셨다. 점장님과의 연락이 끝나자마자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옷 두어 가지를 넣은 가벼운 짐을 챙겼다. 이왕이면 조용한 동네,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가고 싶었다. 이 집은 언제든 아빠가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라 할 것이기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희나는 서둘러 양양으로 향했다.



메시지로 온 숙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자 아늑한 인테리어로 된 일반 가정집이 희나를 반겨주었다. 희나는 가방을 신발장 앞에 놓은 채 짐을 푸르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툭 하고 침대에 몸을 내려놓는 순간, 툭 하고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조금씩 흐르던 눈물이 얼굴 옆을 지나 이불이 축축해질 만큼 흘렀다. 창피해서도 아니고, 결혼을 못해서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결국에 당신은 탈락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희나는 나이 서른이 넘고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했고, 울면 그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실패한 것 같았다. 희나가 한 모든 선택이. 그렇게 한참을, 이제껏 흘리지 않고 꾹 참던 감정을 눈물로 다 쏟아냈다.


얼마나 울었을까.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만큼 울고 나서야 희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그렇게 울고는 배가 고픈 게 어이없었다. 숙소를 나와 그 근처를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양양이라고 하기엔 무척 조용한 동네였다. 숙소 1층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려 하니 직원이 문 앞의 OPEN 팻말을 CLOSE로 바꾸고 있었다. 아직 6시밖에 되지 않았다. 해도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끝났나요?”

“저희 갑자기 전기 전원이 고장 나서요. 죄송해요.”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부은 눈을 보고 직원이 희나를 잡았다.


“어두워도 괜찮으면 들어오실래요?”


왜 였을까. 평소였으면 괜찮습니다, 하고 돌아섰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입에서는 알겠다는 말이 나왔다. 따뜻함에 굶주려 있는 사람처럼. 직원이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언니, 초대 손님이요!” 하며 소리쳤다. 제일 안쪽 소파 자리를 가리키며 소윤이 이쪽으로 앉으라 권했다. 초에 불을 켜 테이블에 놓았다. 어둡던 자리가 조금 환해졌다.


“오늘 전기가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하고 떡볶이를 사 왔는데, 민이가 초대 손님을 데려왔네요.”

“아.. 저는..”


역시 이건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밥을 먹다니, 일어나려 하자 소윤이 물었다.


“저녁 드셨어요?”

“아니요. 아직..”

“이 동네는 외져서 음식 배달이 안 돼요. 조금 나가면 음식점들이 있긴 하지만 초저녁이면 닫기도 하고, 또 오늘 사온 떡볶이가 양양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라 꼭 드셨으면 좋겠는데.”


신기한 조합이다. 카페 주인과, 직원과, 처음 보는 손님인 희나가 마주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생각보다 매워 눈물도 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희나가 예약한 숙소 관리자는 소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물주냐고 놀라서 묻는 말에 소윤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제가 아니라 저희 할머니요. 희나씨가 묵는 그 숙소와 그 위의 제가 사는 곳, 그리고 이 카페. 모두 빌린 거예요. 저도 세입자예요.”


“희나씨가 들어오는데 어쩌면 오늘 묵으시는 분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요?”

차갑게 우린 민트 티 세 잔을 탁자에 놓으며 민이가 물었다.


“여기 사는 사람 같지가 않잖아. 아무리 편하게 입어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대화는 즐거웠다. 둘은 선을 넘지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희나는 자신의 파혼을 털어놓았다. 담담하게 그래서 이곳에 왔다 이야기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둘은 놀란 기색 없이 들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윤이 희나에게 쿠킹클래스를 권했다.


“내일 아침에 베이킹 클래스가 있어요. 1회성 클래스라 들을 만하실 거예요. 의외로 낯선 곳에 와서 낯선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희나씨에게도 그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희나는 조금 고민하다 이내 알겠다 답했다. 그날 밤, 울어서인지 배부르게 떡볶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소윤과 민이와 한 이야기가 즐거워서인지 희나는 잠에 들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오래간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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