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09

Part3. 겨울

by 오 지영


Part3. 겨울


<희나>


희나의 파혼은 쉽게 사람들 입에 올랐다. 본사에서 직원이 올 때마다 짠한 얼굴로 쳐다보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다행히 금방 사라졌다. 몇 주짜리 가십일 뿐이었다. 점장이 다른 새 지점 오픈을 맡으며 부점장이던 희나가 운 좋게도 점장이 될 기회를 얻었다. 본사 직원이 기혼자보다는 미혼인 사람이 낫지, 하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본사 사람도, 진짜로 그래서 뽑았다면 본사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소윤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 연락을 받은 것은 한참 바쁜 점심시간이었다.


갑자기 닥친 죽음에 바들바들 떨고 있음이 전화 너머에서부터 느껴졌다. 조퇴와 연차를 연달아냈다. 부점장에게 스케줄 조정을 부탁하며 급히 양양으로 향했다.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하여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민폐가 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희나의 세상은 전보다 넓어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소윤에게로 향했다. 늘 사람을 챙기고 웃는 얼굴로 반겨주던 소윤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안 그래도 흰 피부가 더 창백했다. 파란 혈관이 금방이라도 몸을 뚫고 나올 것처럼 흰 피부에 드러났다. 그리고 겁먹은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왔다. 가족을 잃는 것은 겁이 나는 거구나. 계속 울기만 하는 소윤 대신 희나가 수의부터 발인 예약 모든 것을 했다. 직접적인 이별을 많이 겪지는 못했지만 집안 어른이나 회사에서 장례식을 많이 다녔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이 나이가 그랬다.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을 더 자주 가는 나이.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별하게 되는 나이.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카페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수목장에 안치했다. 소윤을 집에 데려가 눕힌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운전대를 손에 쥐고 올라오는 동안 희나는 계속 이별을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와 계속 이별을 하는 거구나. 지난여름에 한 이별과는 또 다른 이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 다가온다면 희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윤처럼 울게 될까? 아니면 조용히 받아들이게 될까. 전하지 못한 말들을 후회할까. 무서웠다. 이별은 무섭고, 아팠다. 운전을 하며 괜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밥 먹었냐 물었다. 이별을 앞두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했다. 당신을 생각하고 있음을. 내가 사실 당신을 아끼고 있음을.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점장님, 어쩐 일이세요?”

마감조인 수아가 희나에게 물었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한 듯 보였다. 무리한 스케줄 조정으로 분명 난감해했을 직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정을 소화해내느라 대신 나온 직원들에게 미안해 희나는 집 대신 매장으로 왔다.


“미안해서, 커피 사주려고. 윤오는?”

“밥 먹으러 가서 아직 안 왔어요.”

“밥 먹었어?”

“네, 저는 먼저 먹고 왔어요.”


근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 와 매장 안에서 마셨다. 마감을 앞둔 시간이라 조용했다.


수아가 커피를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시더니 희나에게 말했다.


“그냥 집으로 가시지. 피곤해 보여요.”


“이것만 다 마시고 갈 거야. 여튼, 오늘 나와줘서 고마워.”

“점장님, 그거 알아요?”

“뭐?”

“조금 달라졌어요.”

“무슨 소리야?”

“뭔가 전보다 따듯해졌달까. 여하튼 달라요, 달라.”


희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들썩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아마 양양에 갔을 때부터다. 소윤을 만나고 새봄을 만나고 지안과 민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함을 느꼈다. 누군가를 만나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 계절을 오롯이 느끼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기념하고. 희나는 하지 않던 사소한 모든 것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고마워.”

“이것 봐요. 말투 자체가 바뀌었다니까요.”


수아가 희나를 놀리듯 말했다.





<지안>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홍콩이었다.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라다. 가야 했다. 가려면 지안을 대체할 인력이 있어야 했는데 해외 출장까지 와서 대체 인력을 찾기란 어려웠다. 광고주와 배우, 촬영 감독 사이에서 조율을 해야 하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런 지안에게 새봄과 희나가 자기들이 있으니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이미 속상해진 마음은 출장 내내 지안을 따라다녔다.


“너 못 잘 것 같아서.”

“소윤언니는 어때요?”

“지안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는 해 야할 일을 잘하는 게 답이야. 괜찮아.”


희나가 말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결국 희나의 말 대로 꾸역꾸역 출장 일정을 다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발인이 한참 지난날이었다. 양양에 가 소윤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얹힌 듯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소중하지 않은 것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는 상황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소중한 것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답을 하기 어려웠다. 광고를 좋아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대학 다니는 내내 공모전을 위해, 공모전에 의해 살았다. 그 많은 대행사 중 오고 싶던 곳이었다.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하지만 이 일을 10년이나 해왔음에도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겨울, 지안은 사직서를 냈다. 지안의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낸 용기다운 용기였다. 퇴사 결정을 하기 전까지 생각은 오래 걸렸지만 결정을 내리고 나니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 급속으로 처리되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퇴사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어디로 이직하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아직 예정이 없다 말했다. 반은 한심하게, 반은 걱정으로 지안을 쳐다봤다. 굳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이었다.


졸업장 잉크도 마르지 않은 채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으니, 20, 30대를 통틀어 그럴듯하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스물넷에는 백수가 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웠는데 서른넷에는 백수가 되고 싶어 선택했다.


그렇게, 지안은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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