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10

Part3. 겨울

by 오 지영

Part3. 겨울


<새봄>


겨울은 준비의 계절이다. 봄을 위한 준비의 계절. 꽃을 사러 오는 사람도, 꽃꽂이를 배우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새봄에게도 준비하는 계절인 셈이다.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여유로웠다.


[원데이 클래스 토요일 오후 4:00 예약

예약자 성함 박유준 010-2746-2821]


이 겨울에 누가 꽃꽂이를 한다는 거지. 간혹 여자 친구 선물을 준다며 남자 손님들도 클래스에 오긴 했지만 1:1 클래스를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새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약 확정]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혹시 클래스 예약하신 분이실까요?”

“네 맞아요.”

“선물하실 건가요? 어떤 용도로 배우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뇨.. 그냥 배우고 싶어서.”


스물여섯쯤 되려나, 어려 보이는 남자가 등장해서는 그냥 꽃꽂이를 배우고 싶어서 이 겨울에 신청을 했다고 했다. 이 겨울에? 그냥? 새봄은 조금 의아했지만 같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의논하고 컨디셔닝을 시작했다.


“이렇게 잡고 정리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저분한 잎을 떼는 거예요.”


생각보다 컨디셔닝이 빨리 끝났다. 새봄은 유준의 손재주를 칭찬했다. 그러니 유준은 근처에서 도기를 굽는 일을 한다고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유준은 플라타너스에 왔다. 꽃을 만지기 전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꽃에 대해 전혀 모르던 유준이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 꽃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 꽃은 넣지 않겠다며 빼기도 했다. 가끔은 평일에도 커피 한잔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갔다. 바빠서 보지 못하다가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오면 유준이 놓고 간 커피가 놓여있고는 했다. 새봄은 그런 유준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몇 번 하더니, 어느새 그가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준>


용기를 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이미 겨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정 안되면 트리라도 만든다, 라는 마음으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예약 확정 문자가 왔다.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네? 네니요.”

“네니요? 유준아 미친 거야?”

“아니요. 형. 그냥 자꾸 웃음이 나네요.”

“네가 이 일이 힘들지가 않나 보다. 평생 해도 되겠다 야.”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유준은 들떠있었다. 당일 아침 소풍 가는 아이처럼 일찍 눈이 떠졌다. 무슨 옷을 입을지 한참을 옷장 앞에 서서 이것저것 꺼내보았다. 마땅한 옷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매일 입는 검은색 니트를 골랐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왁스로 이리저리 머리 손질을 했는데 거울 앞에 웬 아저씨가 서 있었다. 다시 머리를 감았다. 향수를 들어 손목과, 목, 머리에 뿌렸다. 옷에도 한 번, 머리에도 또 한 번, 어, 망했다. 너무 많이 뿌렸는데. 다시 샤워를 했다. 그렇게 준비만 두 시간이 걸렸다. 일찍 눈을 뜨게 해 준 신에게 감사해하며 플라타너스로 향했다.


그래도 몇 번 오며 가며 마주쳤으니 얼굴을 알아보지 않을까 했지만 새봄은 유준을 처음 보는 듯 대했다. 그 점이 유준을 잠시 시무룩하게 만들었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또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 금세 잊혔다.


“손재주가 좋으시네요. 남자분들 처음 오셔서 이렇게 잘 못하시는데.”

“아.. 손으로 뭘 만들거든요.”


뭘 만든다는 말에 새봄이 관심을 가졌다. 커다란 눈이 더 커다래졌다. 서른둘이 저렇게 귀여워도 되나.


“어떤 거요?”

“저 위에 도자기 공방에서 도기일 돕고 있어요.”

“아! 저 알아요. 수찬씨네!”

“맞아요.”


새봄은 말을 멈추더니 혹시 우리 플리마켓에서도 봤냐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사람 기억을 잘 못한다며 미안해했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유준은 새봄을 어쩐지 놀리고 싶어 꽤 마주쳤고, 주차장에서 싸우는 모습도 봤다고 대답했더니 새봄의 얼굴이 붉어졌다. 교집합 되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새봄의 나이, 옆 카페 사장인 소윤과 많이 친하다는 것,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완성! 마음에 들어요?”

“네. 마음에 들어요.”

“여기요, 유준씨. 기울이지 말고 이대로 가져가세요.”


겨울 내내 꽃을 배웠다. 한 번도 관심 없었던 꽃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유준 역시 꽃을 좋아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뀌었다. 스물아홉이 되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서는 조금 더 용기를 냈다. 가끔 출근길에 커피 두 잔을 사 한잔을 플라타너스에 밀어 넣고 갔다. 친절이 부담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다시, 새봄>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눈 때문인지 길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점점 쌓여 집에 갈 때 애를 먹을 것 같았다. 전화를 걸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눈사람이 된 유준이 들어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오늘은 취소해야 하지 않나 하고 전화 거는 참이었어요.”

“눈이 와서 온 건데요?”


유준은 눈 오는 날을 좋아한다며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눈이 오는 게 뭐 그리 좋냐며 새봄이 대답했다. 꽁꽁 얼어 차가워진 손을 따뜻한 찻잔을 잡고 녹였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흩날리는 눈을 구경했다. 점점 쌓이는 눈에 새봄은 오늘은 정말 일찍 들어가는 게 좋겠다 말했다. 강원도를 얕보지 말아요. 그러자 유준이 말했다.


“같이 눈 쌓이는 거 보면 안 돼요?


그 눈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새봄은 그 눈빛만으로 부끄러워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러고는 카운터로 발길을 옮겼다.


“와인 한잔 할래요?”


지난번 희나가 선물로 주고 갔던 와인을 꺼내자 유준이 좋죠, 하며 와인 잔 세팅을 도왔다. 그리고 한 병을 다 마셔갈 때쯤, 드디어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헤어졌어요. 아이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얘기까지 마치고 나니 새봄은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유준의 시선을 이리저리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질 때, 잠시 마주친 유준의 두 눈이 잔상처럼 남았다.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새봄을 향해 달려오는 누군가가 언뜻 보인 듯도 했다.


달려오던 남자는 숨이 차지도 않은지 말했다.


“도기를 만들 때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우리 마음이 매일매일 다르듯 도기도 매일매일 다르게 만들어져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만들어도, 고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모양이 비뚤어 지거나 아예 다른 형태가 되기도 해요. 결국 좋은 도기를 만드는 건 좋은 마음이라는 거죠. 저는 사람도 같다고 생각해요. 나의 좋은 마음이 상대를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거죠. 아마 새봄씨를 그렇게 말했던 것은 그분의 마음이 달라져서였을 거예요. 새봄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살짝 풀린 눈이지만 유준은 새봄을 똑바로 바라봤다. 새봄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문장에서 더 강한 어조가 느껴졌다. 새봄은 그 말에 또 눈물이 고였다. 고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꾹 참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참지 말아요.”


무엇을 참지 말라고 한 것일까. 새봄의 눈물일까. 우리의 취기일까. 서로에 대한 욕망일까. 참지 말라는 말과 함께 유준의 입술이 새봄에게 닿았다. 입술을 떼자마자 새봄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유준은 그 손위로 한번 더 입맞춤을 하였다. 그러자 새봄의 손에 힘이 풀리고 유준의 목덜미를 감쌌다.


“좋아해요.”

“나는 유준씨가 생각하는 어른도 아니고, 실수투성이인 사람인데.”

“나는 새봄씨의 어른스러운 모습이나 아이 같은 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아, 다르게 얘기해볼까요? 나는 새봄씨의 어른스러운 모습도 아이 같은 모습도 또 바보 같은 모습도 좋아해요. 한새봄이라는 사람이 담고 있는 많은 모습들을 좋아해요.”


모든 모습이 아니라 많은 모습을 좋아한다고 했다. 새봄은 그 말이 좋았다.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짓이다. 그동안 헤어지며 준우가 남긴 너무 아이 같아서 라는 말이 목 어딘가에 걸려있다 조금씩 작아져 위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유준의 말대로라면 나는 아이 같기도, 가끔은 어른 같기도 한 한새봄이었다. 그 모습들은 나라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들 중 어느 한 부분일 뿐이었다.








<다시, 유준>


눈이 많이 내렸다. 강원도는 역시 눈이 많이 내리네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더 내려서 꽃집에 갇혔으면 좋겠다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도 했다. 눈사람이 돼서 등장한 유준의 겉옷을 새봄이 툭툭 털어주며 걸어왔냐 물었다. 그날은 둘 다 꽃을 만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창 밖의 수많은 눈송이를 쳐다보았다.


수 공방은 겨울에 손님이 많냐는 말에 그럴 리가 있냐며 양양은 여행자들이 들리는 곳, 서핑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곧 수찬이 망할 것 같다고도 했다. 새봄이 마시던 차에 사레가 들려 켁켁 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가끔 한 달 살기 하시는 분들이나 주민들도 배우러 오시고 근처 중고등학교 방과 후 활동으로 나가기도 한다고 새봄도 한번 들려보라 초대를 했다.


자꾸 쫓아내려 하는 새봄에게 나름 돌직구를 던졌다. 저는 여기서, 이 눈을 보고 싶습니다! 하고. 새봄은 그런 유준을 말리는 것을 포기한 듯 와인을 꺼냈다. 눈이 주는 무드와 어울리는 와인이었다. 와인을 마시자 갑자기 작아져 있던 용기가 샘솟았다. 그동안 관찰한 바로는 남자친구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확실히 확인해봐야 했다.


“남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새봄이 잠깐 멈칫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없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들려 커피를 놓고 갔다. 꽃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1:1 클래스를 계속해서 들으러 왔다. 유준의 마음을 새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런 유준의 질문에 새봄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혼자인 사람이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


그 말이 어색했을까. 새봄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등지고 창가를 바라봤다. 그리고 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 헤어질 때 그 말이 상처가 되었는데 이제는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단 이야기, 그래도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면 주저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타까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지 말아요. 그래서 유준은 뜬금없이 도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참지 말아요.”


새봄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놀란 듯 한 새봄이 보였다. 새봄의 손으로 한번 더 입맞춤을 했다.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아,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남자는 다 위험하지만 저는 진짜 아니에요. 그러니 제발, 피하지 말아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유준의 머리가 가득해질 때쯤 새봄의 손이 유준의 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한번 더 입맞춤을 나눴다. 처음보다 더 깊게. 이 순간을 술에 의한 가벼움이라 생각지 않길.


“좋아해요.”


유준은 입을 맞추는 사이사이 계속 좋아한다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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