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11

Part3. 겨울

by 오 지영

part3. 겨울


<민>


장례식장에서 민이의 신경은 온통 준이에게 가있었다. 준이가 한 번쯤 들를 것을 알기에 자꾸 기다려졌다. 그러다 준이와 눈을 마주친 순간, 민이의 눈을 피한 채 소윤에게 인사를 건네는 준이를 보고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어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화장실에 있다 나왔다. 이미 준이는 돌아가고 난 뒤였다.


새벽이 되자 거의 쓰러져 자고 있는 소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밖에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장례식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있으니 준이 형인 훈의 죽음이 떠올랐다. 내가 건네는 위로가 준이에게 위로로 닿지 않던 때. 무슨 말도 할 수 없던 그 시간들. 둘은 의좋은 형제였다. 소윤과 훈에게 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우리 사랑의 응원자이며 민이와 준이가 생각하는 연애관의 종결자였다. 훈이 죽고 준이는 한동안 흔들렸다. 아무리 잡아도 잡히지 않고,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서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겨울이었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준비로 도서관 소등 때까지 공부를 했다. 집에 가는 길 후문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를 사려다 준이를 만났다. 너도 사줄까? 하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하나를 준이 손에 쥐어주고 같이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민이에게 받아 든 캔 커피의 뚜껑을 따 마시면서 준이는 물었다.

“왜 안 마셔?”

“나는 이거 손 난로용. 버스정류장까지 추워서.”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까지 2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시간쯤이면 편의점 앞에서 마주했다. 준이는 민이 손에 캔 커피를 들려주었다.


“시험 언제 다 끝나?’

“나는 내일 2교시만 보면 돼. 이제 방학이다.”

“아.. 그래?”


편의점으로 들어가려던 준이가 문에서 주춤하더니 방향을 틀었다.


“손”


민이가 내민 손에 준이 손이 포개어졌다. 캔 커피 대신이라고 했다. 준이의 손은 정말로 캔커피만큼 따뜻했다. 아니 캔커피보다 더. 그렇게 예뻤다. 우리의 시작이. 겨울은 이래서 싫다. 처음으로 손을 잡던 날, 눈사람을 만들던 그 해, 빨개진 코가 귀엽다며 물어버리던 준이, 같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보던 나 홀로 집에. 너무 많은 10년의 겨울이 떠오른다.


발인까지 마치고 희나와 함께 소윤을 집까지 데려다준 뒤 집에 와 뻗었다. 3일이 마치 일주일 같았다. 소윤에게 그 3일은 한 달 같았을까, 혹은 하루 같았을까. 나는 이제 가족이 없다며, 마지막에 목놓아 우는 소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에 민이 역시 눈물이 났다. 준이도 그랬을까. 그때는 지금 보다 어려 아무 말을 해줄 수 없었는데. 아니, 지금이었다고 한들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짐작해서 위로하는 것만큼 최악은 없으니까. 그래도 그때 더 힘이 되어줬어야 했는데. 상실감 또는 누군가의 죽음을 느끼기에 나 역시 너무 어린 나이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 침대 위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잠을 깼다.


<김성연>


“어, 어쩐 일이야?”

“야! 정준 인터뷰 봤어?”

“무슨 소리야.”


일찍이 편집자가 된 준이는 두어 번 출판사를 옮겼다. 세 번째 출판사는 전과는 다르게 큰 곳이어서 그런지 이름 대면 알만한 작가의 편집도 맡은 듯했다. 헤어질 때쯤의 일이라 그 후의 일은 잘 모른다. 출판업계에서 꽤 읽히는 bookstore라는 잡지의 [작가와의 만남]은 준이가 오랫동안 담당해온 칼럼이었다. 헤어지고도 몇 번 읽다 마지막으로 준이를 본 후로는 읽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서 e-book으로 구매했다. 편리한 세상. 마우스로 페이지를 계속해 넘기니 준이의 이름이 나왔다.


24페이지 작가와의 만남 <주준영 선생님과 말하는 사랑>


“뭐가 어디 있다는 거야.”

중얼거리며 글자를 따라 눈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주준영 : 그럼 제가 역 질문을 해보죠. 사랑을 하고 계시나요?


정준 편집자 : 작가님, 질문이 너무 포괄적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 계절, 지나가는 고양이, 겨울에 마시는 사케 그 모든 것이요.


주준영 : 아니요. 그런 사랑 말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사랑이요.


정준 편집자 : 사랑하죠. 이 계절을 좋아하게 해 줬던 그 사람, 지나가는 고양이만 보면 한참을 앉아 구경했던 그 자리, 그 사람과 마시던 따뜻한 사케. 그 사람과 했던 모든 것들을 사랑하죠.


주준영 : 그 사람과 사랑이 지속되지 않아도 그 무언가 들이 여전히 좋나요?


정준 편집자 : 저는 여전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주준영 : 바로 그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관계의 속성..]


민이었다.


준이가 말하는 건 분명 나다. 저런 말을 하려면 직접 와서 해야지 무슨 다른 사람을 보며 하고, 종이 쪼가리에 실리게 한단 말인가. 이럴 거면 내게 연락을 했어야지. 나를 만나고 간 날, 나를 다시 안은 날, 널 봐서 좋았다고, 보고 싶었다고, 무슨 말이라도 했어야지.




<준>


헤어진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계절도 두 번 바뀌었다. 이직을 하고, 민이와 헤어지고, 이사를 하고 정신없는 여름과 가을이 지나니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헤어진 후 민이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면 근처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연락을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민이 앞에 서있고는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봐야 했다.


민이를 다시 안으며 생각했다. 시간아 제발 멈춰라, 제발. 멈출 수 없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내일 민이가 일어나면 후회한다고 해야지. 네가 한 헤어지자는 말에 그래 라고 말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나는 네가 없는 삶이 의미가 없다고.


곤히 잠들어 있는 민이의 머리카락을 넘기고, 예쁜 이마를 만지며 생각했다.


전화벨 소리에 깼다. 이른 새벽이었다. 오만 부나 찍은 책이었는데 실수가 생겨 모두 휴지조각이 될 판이었다. 위에서 재인쇄는 불가능하다는 결정이 빠르게 내려졌고,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모든 직원이 총동원되어 오탈자를 테이프로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황급히 민이의 집에서 나왔다. 작가님께 전화를 걸어 연신 사과를 드리며 작가님 댁으로 향했다.


이틀을 꼬박 새우고 잠시 집에 들어와 몇 시간 잤다 또 나가 펼쳐져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니 그제야 생각이 난 것이다. 아, 민이. 김민. 준이는 휴대폰에 썼다 지웠다를 몇 번 반복하다 마치 별일이 아닌 것처럼 안부를 물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밥은 먹었냐고. 나름 고민한 문장이었다.


사귀고 1년쯤 지났을 때였나.


“상대가 밥을 먹었는지 궁금한 건 사랑이야. 보통 친구들한테 밥 먹었냐고 매 끼니를 묻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지.”

“인생에서 밥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어. 그치? 그건 사랑이야.”

“저녁은 먹었어?”

“뭐야, 같이 먹었잖아.”

“사랑한다는 말이야.”

“뭐야, 진짜.”


어이없다는 듯 말하지만 민이는 웃고 있었다. 행복했다. 우리 이렇게 살다 결혼할 수 있을까. 감히 내가 널 상대로 영원을 입에 담아도 될까. 우리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해도 되는 사람일까. 행복하면 불안했다. 행복하면 주로 좋지 않은 일이 따라왔으니까.


8살 내 생일날 엄마는 집을 나갔고, 대학에 붙던 날 아빠는 공장에서 크게 다쳐왔다. 내 삶에 기댈 대상은 형 밖에 없었다. 형은 모든 것을 책임지고도, 가난을 등에 업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 옆에 형수가 등장했다. 그리고는 행복했던 것 같다. 잠시 햇살이 비추는 듯했다. 하지만 형은 결혼 후 3년 뒤 죽었다. 췌장암 3기라고 했다. 형이 왜. 이렇게 어린데. 형은 우리 집의 기둥이잖아. 우리 이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잖아. 나는. 그럼 형수는. 우리는 이제 어떡해.


형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리고 나빠지는 건강만큼, 형의 생각도 무언가에 갉아 먹히고 있었다. 더 똑똑했기에, 더 강했기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그렇게 외롭게, 슬프게, 아프게 형은 우리를 떠났다. 그 시기에는 민이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 그저 내 힘듦, 내 슬픔에 취해 매일 술을 먹었다. 그때, 인정했다. 나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민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밥 먹었냐는 것뿐이었다. 내 사정을 늘어놓으며 미안하다거나, 이해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돌고 돌아 민이에게 아직 널 사랑하고 있다고 들린다면 좋을 것 같았다.


준이는 민이가 보고 싶은 날이면 민이를 찾아갔다. 술을 마시고, 늘 그렇듯 서로를 안았다. 새근새근 잠에 든 민이의 짧은 손톱을 준이의 손가락 끝으로 만졌다. 모든 것이 불안정해도 민이의 손을 잡으면 이내 괜찮아졌다. 그렇게 헤어진 후 우리의 만남이 세 번 반복되는 날, 민이는 그만 오라 했다. 헤어질 때도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민이의 단호한 표정과 웃음기 없는 말투에서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민이를 또 화나게 만들었다.


졸업하자마자 출판사에 들어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문창과를 나왔지만 편집자로서의 일도 나름 재미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할수록 민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랬다. 민이는 졸업 후 계속 글을 썼다. 하지만 당선과는 멀었다.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또 쓰면 되지, 했지만 몇 년 동안 탈락이라는 글자만 반복한 민이는 많이 작아져 있었다. 작아지는 동안 내 슬픔으로 민이의 슬픔을 살피지 못했다. 처음 민이의 손을 잡았을 때 민이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지만 나와 지낸 몇 년 사이에 빛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 불행이 옮겨간 것은 아닐까.


“지금 뭐라고 했어?”

“그니까 내 말은 조금 쉬는 게 낫지..”

“네 눈에도 내 글이 형편없어 보여?”

“그게 아니라, 민아.”


민이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이 직업에 만족할수록 불안했던 것 같다. 소속감 없이 30대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잘 몰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걷는 느낌일까. 글 쓰는 것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민이의 마음이 계속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살피지 못했다. 마지막엔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만 고르고 골라 던졌다. 깨진 유리조각 중 제일 날카로운 것만 고른 것처럼 뾰족한 조각들이 날아와 박혔다. 아팠다. 술이 깨고 정신 차려보니 평소에 이런 마음이었나 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상처를 극복할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민이 말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우리는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했다. 이렇게 아플지도 모르고 미련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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