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소설 I 여름 지나 봄 I 12

Part4. 봄

by 오 지영


Part4. 봄


<지안>


“얼굴 좋아졌다.”


퇴근하고 갑자기 찾아온 소민과 파스타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쉬는 동안 얼굴이 좋아졌다며, 신생아 피부 같다고 얼굴을 자꾸 만지는 소민의 손을 계속 뿌리쳤다.


회사는 어떠냐는 지안의 물음에 소민은 똑같다 답했다.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부려먹고, 똑같이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한다고. 지안이 회사를 나가고 난 뒤 회사에서는 지안의 로또 당첨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밖에 모르던 지안이 갑작스레 퇴사를 했고, 이 업계는 좁아 이직을 하면 어디서든 그 사람의 행방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니 그런 소문이 날만도 했다. 이제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지만.


“그래도 가끔 재미있긴 했어. 일이 너무 많았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이었으니 견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 회사 사람을 너무 부려먹어.”


인상을 찌푸리는 지안에게 소민이 와인 잔을 들며 짠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그만 말해. 나는 계속 다녀야 하잖아. 나는 대출금 갚으려면 계속 다닐 수밖에 없어. 계속 우물 안 개구리 할 거야.”

“맞네. 나도 대출금 있었으면 아마 못 그만뒀겠지?”

“30대는 대출금 갚다가 끝나는 나이야.”

소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40대에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렇지. 우리 40대에 지금보다 더 행복하자?”

“일을 그만두니까 막 세상이 다 빛나? 어떻게 그런 말을 웃으며 하지?”


여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마다 해외여행을 기를 쓰며 다녔다. 마지막에 몰아 쓰긴 했지만 휴가도 사용했다. 하지만 광고대행사라는 점에서 내 스케줄보다 회사 스케줄이 우선시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행을 가려고 짐을 쌌다 다시 푸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었고, 어딜 가더라도 노트북을 들고 가야 했다.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장기 근속자들은 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만 남았다. 나 역시 그랬다. 이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상 밖에서 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꽤 어려운 일을 꽤 힘들게 하고 있었다.


지안은 소윤의 카페에서 처음으로 스콘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종종 유튜브를 보며 집에서 쿠키를 구웠다. 그러다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자격증 반을 등록했다. 중간에 후회도 했지만 어찌어찌 모든 과정을 수료했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몇 번 소윤에게 가져가 맛 평가를 받았다. 소윤은 지안에게 제안했다.


“만들어서 우리 카페에 납품하는 건 어때? 알다시피 우리는 손이 모자라서. 소량 납품이니까 충분히 집에 있는 오븐으로 될 거 같은데, 아니면 여기 나와서 구워도 되고.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카페 납품도 가능할 것 같고.”


“이거 특혜예요?”


“특혜지.”


소윤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양양까지 넉넉잡아 2시간. 내가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제 없다. 전세가 몇 월까지지? 두 달이면 끝난다. 양양의 집값은? 모른다. 서울보다는 싸지 않을까? 직장부터 집까지 모두 이렇게 환경이 바뀌어도 되는 것일까? 너무 좋게만 흘러갈 때 한 번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혹시 지금인가? 별별 생각을 하다 맥주 한 캔을 땄다. 그리고 결정했다. 양양에 가기로.


양양에 온 뒤 지안의 하루는 서울에서와 많이 달랐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전날 해놓은 반죽으로 쿠키와 스콘을 구워 아침 일찍 소윤의 카페에 가져다 놓고, 민이가 내려주는 커피 한잔을 마셨다. 창가에 앉아 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계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둘러싼 길을 한 바퀴 크게 돌고 와 새봄에게 들려 점심을 먹었다. 가끔 새봄의 꽃 손질을 돕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기 공방에서 밥그릇, 국그릇, 수저 받침대 등을 만들기도 하고 주말에는 희나를 기다렸다 함께 서핑을 배웠다. 크게 벌지도, 크게 쓰지도 않는 삶이지만 무엇을 계속해서 배우는 삶은 좋았다.


자전거를 타다 벚꽃이 활짝 핀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 희나에게 전송했다.


[언니, 봄이에요.]



<새봄>


오랜만에 꽃집을 닫고 서울에 올라왔다. 유준이 몇 주 전부터 같이 가고 싶다 하던 전시 때문이었다. KTX에서 내리니 저 멀리서 말끔히 차려입은 유준이 손을 세차게 흔들며 새봄을 불렀다. 새봄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고 하자, 입 모양만 뻥긋하며 새봄의 이름을 불렀다.


새로 지어진 박물관답게 외관도 예뻤다. 도예에 문외한인 새봄은 그래도 데려 와 준 유준의 성의를 생각해 한 작품 한 작품 열심히 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새봄을 유준은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안 봐도 돼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내가 모르는 세계니까.”


신인 작가들의 전시 공간은 신기했다. 작품 하나하나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신인이라는 말이 주는 힘인지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도기들이었다. 조금은 난해한 도기들 속에서 작고 영롱한 화병이 보였다.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색이었다. 어떻게 이런 빛이 나지. 새봄은 화병 앞에 멈추었다. 작가 이름으로 시선을 옮겼다.


입상 박유준.


유준을 바라보자 유준이 새봄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내가 말했던 것 기억해요? 좋은 도기는 좋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했던 말이요. 나 이거 만들 때 새봄씨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좋은 도기를 만들 수 있었어요.”


유준의 열 번째 고백이었다.


새봄에 눈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엇, 안돼요. 여기서 울면 안 돼.”


“안 울어요. 안 울 거야.”


유준은 고개를 낮춰 바닥을 보고 있는 새봄의 얼굴을 보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팔 한쪽에 새봄을 잠시 안았다.


새봄과 유준은 전시를 구경한 뒤 다시 양양으로 향했다.


“이런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어차피 그랬어도 소윤 누나네 갔을 거잖아요.”

“맞아. 그렇긴 해요.”



오늘은 지안이 처음으로 집을 얻은 것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지안은 서울에도 본인 집이 없었는데 어쩌다 양양에 집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했다. 그리고 서울이나 양양이나 집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거냐며 우는소리로 집 구매 소감을 말했다.


새봄은 웃고 떠드는 언니들을 바라보았다. 유준이 소윤에게 뭐 때문인지 혼이 나고 있었다. 언젠가 희나에게 저는 너무 요동쳐요, 하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요동치지 않았다. 희나 말대로 닻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애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유준이 와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유준을 만나게 된 것은 다 언니들 덕분이었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게 보듬어준 마음들. 충분히 슬퍼하게 두고, 계속해서 나의 잘못이 아니라 말해주던 사람들. 그래서 유준의 말들이 더 깊게 들어온 것이라고.


지켜보던 새봄이 희나와 소윤에게로 걸었다.


“뭔데, 나도 말해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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