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가을
Part2. 가을
<희나>
달이 아름답네요.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한 뒤로 달을 보고 아름답다 하는 것은 사랑한다의 또 다른 말이 되었다.
“잠 안 와?”
“응. 먼저 자.”
“그럼 나도 기다리지 뭐. 잠아 어서 와라~”
“뭐야, 그게.”
“기다리는 거야. 희나 잠이 언제쯤 도착할까 하고.”
[희나씨, 잘 자요. 좋은 꿈 꿔요.]
[희나야. 잘 자.]
[좋은 꿈 꿔.]
[깨지 말고 푹 자.]
잘 자요.
희나에게는 잘 자요가 그랬다. 불면을 겪은 뒤로 잘 자요는 사랑한다는 말과 동일했는데 수호는 늘 희나에게 잘 자요, 좋은 꿈 꿔요, 그렇게 인사를 했다. 소개로 만난 처음 그날부터 작은 다툼이 있던 날, 바빴던 날, 바쁘지 않던 날까지 모두 그랬다. 수호는 하루의 끝에서 늘 희나의 잠을 빌어주었다. 이런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희나는 수호를 만나고 난 뒤 종종 수면제 없이 잠을 잤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수호와 헤어지고 다시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양양으로 달려가곤 했다. 곁에 사람을 두는 것이 어려웠다. 주위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요동치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양양에서의 시간들이 더욱 그랬다.
새봄의 꽃집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주차를 했다.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새봄은 희나와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싱그럽다. 사람에게 싱그럽다는 말을 할 수가 있나? 새봄은 싱그러웠다. 사랑스럽고, 감정에 솔직하고, 모든 감정이 자연스러운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는 사람. 희나 같이 곁을 주지 않는 사람도 내어줬으니 그것은 새봄의 능력이었다. 가게 안쪽에서 불빛이 하나 꺼졌다. 새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오면서 희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새봄을 보며 희나는 살짝 손을 올렸다.
밤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출렁임 없는 고요한 밤바다. 차에서 담요를 두 개 꺼나 하나는 새봄에게 건네주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괜찮냐는 새봄의 질문에 희나는 답했다.
“영영 안 괜찮을지도 모르지. 영영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나는 가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수호가 헤어짐을 말하던 그 자리. 잘 지내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자꾸 그 자리로 돌아가. 자꾸 <처음부터 다시>에 걸려 돌아가는 것처럼.”
솔직한 말이었다. 순도 100프로 거짓 하나 보태지 않은 감정이었다. 희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봄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저는 언니는 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괜찮아 보인다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나는 마흔이 되어도 아마 서투를 거야. 어쩌면 애초에 서투르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계속 서투르고. 살다 보면 그것이 큰 파도가 아니라 작은 파도일 때가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쉬운 건 아니니까. 한번 보자. 나이가 마흔이 돼도 그런지, 일단 서른일곱까진 아니었어.”
희나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새봄의 등에 손을 살짝 올려놓았다.
“나는 기쁨도 슬픔도 별로 크지 않은 사람이었거든.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것조차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상대방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말이야.”
희나의 말에 새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배웠어. 소윤언니나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동하는 일 꽤 좋은 것 같아.”
희나의 말에 새봄이 눈물을 멈추고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나도 수호에게 저런 모습을 보였다면, 수호가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호는 가끔 희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희나는 정말로 괜찮다 해도 희나의 기분을 의심하며 매번 물었다. 물론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남에게 짐이 되는 건 더 괜찮지 않은 일이었다. 누가 그랬나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슬픔을 반으로 나누면 배가 된다. 나 따로, 나의 슬픔을 들은 사람 따로 같은 무게의 짐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나만 갖고 있으면 늘어날 일이 없으니까.
“언니?”
“그날 양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희나가 새봄에게 말했다. 희나는 본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새삼 놀랐다. 밤바다가 주는 기운인지, 따뜻하고도 차가운 날씨가 주는 기운인지 희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