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 02

연재소설

by 오 지영

기역자로 된 한옥과 별채 하나가 있다. 별채는 여행객들의 숙소로 쓰인다. 남편과 나는 일어나서 간단한 조식을 만들고, 여행객들이 체크아웃을 하면 청소를 하고 다음 여행객을 받는 일과를 보낸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지겹지 않냐는 물음도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민우에 대한 상실감을 사람으로 채우려 하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선생이란 직업을 오래 한 사람답게 여행객들에게 이곳의 유명한 것들을 알려주고, 한옥의 구조를 설명해주기 좋아했다. 구들장이 어떻고, 이 도시가 어떻고. 누가 보면 여기서 20년은 산 사람 같이 말을 했다. 여행객들이 우와, 오래 사셨나 봐요. 하면 머쓱하게 내려온 지 3년 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 대답에 여행객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여름에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겨울이면 방안의 창문을 열어 정원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별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비슷했다. 별채는 꽤 넓어서 보통 3명 이상의 가족단위나 커플 손님이 묵었다. 아이까지 함께 하는 날이면 별채에서 아이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마당을 쓸곤 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 그날의 손님은 30대 중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가인씨? 오느라 많이 힘들었죠.”

“아, 네.”

“온돌이 너무 뜨겁다는 손님이 많아서 혹시 너무 뜨거우면 말해줘요.”

“네.”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한 손님은 낮에 체크인을 하고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오후 내내 방안에만 있었다. 아무리 소도시여도, 겨울이어도 할 것이 꽤 많은데, 하며 남편이 더 안타까워했다.


“겨울이잖아. 괜히 상관하지 마.”

“아니, 여기까지 와서 너무 아깝잖아. 내가 가서 설명을 좀 해줄까?”

“가만히 좀 있으라고요.”


남편의 오지랖을 말리고 나는 저녁이 다 돼서야 보리차를 담은 병과 컵 한 개를 담아 자리끼를 만들어 문 앞에 두고 노크했다. 하지만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새 나갔나.’


밖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마루에 앉아있는 가희가 보였다. 다시 돌아와 담요를 하나 가지고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서는 중정이 보였다. 한가운데 있는 나무 한그루도.


“그렇게 입고 앉아있으면 감기 걸리는데”

“아..”


가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맙다 했다. 내가 가져온 담요를 어깨에 걸쳤다.


“눈이, 예쁘네요.”

“그렇죠? 그래서 일부러 이 공간은 치우지도 않고 둬요. 스스로 녹게. 우리 부부도 가만히 앉아서 여기서 눈 보는 거 좋아하거든.”



“좋아 보이세요.”


가인이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마워라. 서울서 왔어요?”


남편에게는 쓸데없는 말을 걸지 말라고 해놓고 나 역시 쓸데없는 것을 묻는다. 이 나이, 이런 일을 하면 이런 대화는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걸게 된다. 몹쓸 고질병이다.


“네.”

“혼자?”

“네.”


이내 웃음기 없어진 얼굴로 또다시 네, 하고 대답만 하자 나 역시 질문을 멈췄다. 고질병이 있어도 눈치 또한 있으니까 이쯤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쌓여있는 눈을 바라보다 이만 자리를 뜨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가인이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을 와보고 싶었어요.”

“응?”



“혼자가 된 기념으로, 혼자 여행을 와보고 싶었어요.”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사는 게 이상해요.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렇게 싫어지기도 하고, 결혼 준비는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남이 되는 건 어찌나 그렇게 빠른지 몰라요.”


조근조근 말하다 나를 바라보며 고백이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이혼했거든요.”


“아이고, 저런.”


“저번 주에 모든 게 다 처리되었는데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어요. 제 이혼을 제일 처음 아신 분이 되셨네요.”


“어쩌다가”


“모르겠어요. 이유가 뭐였는지도. 신기하게 왜 사랑했는지도 생각 안 나고, 왜 헤어져야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나요.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몰라요.”


가인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털어놔야 할지 모르겠다 했다. 결혼 2년 만에 이혼을, 그것도 모든 걸 혼자서 다 끝내 버렸으니 아마 부모님이 실망하실 거라고. 그것이 걱정된다 했다. 나는 실망할게 뭐 있냐 답했다. 부모에게 물론 자식이 잘 사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긴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이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의 선택이 잘 사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을 건넸다. 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식이 있냐 물었고, 나는 그 말에 어쩐지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차가워서 얼어버린 손을 이불 밑으로 넣어 녹였다. 남편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했다. 역시나 자신은 말도 못 붙이게 하더니, 하며 입을 삐죽였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가희의 마지막 말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자식이 있으세요?”


나는 자식이 있다. 우리 민우. 사랑하는 민우. 하지만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민우. 상처받은 민우. 부모에게 벽을 쌓은 민우. 멀어진 민우. 그날은 민우를 생각하며 잠들어서인지 꿈에 작은 민우가 나왔다. 고작 여섯 살 된 아이와 손을 잡고 어딘가를 걷는 꿈. 깨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걷고 싶었다. 민우야, 네 인생이 네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꼭 엄마에게 말해줘. 말이 어려우면 신호를 보내줘. 어떤 신호가 좋을까. 그래, 지금처럼 이렇게 손을 내미는 거야. 엄마에게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면 엄마는 네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일게. 나는 꿈에서 민우와 신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민우의 손을 꽉 잡았다. 새벽에 잠에서 깨 꺼이꺼이 울었다. 우는 소리에 놀라 남편이 일어나 등을 토닥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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