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분기에 한 번은 서울에 간다. 남편과 부부 동반 모임을 참석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의지했던 같은 지역 교사 모임은 올해로 3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제 거의 퇴직했고, 교직 생활이 아닌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창신동의 오래된 중국집에서. 이 나이 때 모임은 보통 아이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니 아이의 이야기는 결혼을 할 때 빼고는 잘하지 않는다. 그 마저도 우리 부부의 눈치를 보며, 미안해하며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이런 눈치조차 불편하여 점점 나가는 횟수를 줄여볼까 했다. 하지만 모두 직업이 선생이었던 사람들이어서인지 우리의 일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가슴 아파했고, 같이 걱정해주고, 또 늘 마음을 살폈다. 배려받은 것을 알고 있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참석하는 편이다.
모임을 참석하기 전에는 친구가 하는 부동산을 찾는다. 민우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용산의 조그만 아파트는 세를 주고 있다. 민우에게 연락이 닿지 않은지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그냥 비워두기에는 아깝기도 하고 집 관리를 하러 우리가 자주 올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돌아왔을 때 비어있는 게 좋지 않을까.”
“민우가 우리에게 돌아온다면 그런 게 중요할까.”
“그건 그렇네.”
그래서 1년 전쯤 전세를 주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출판사일을 한다는, 민우 또래의 아가씨였다. 월세가 아닌 전세이니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잘 없을 것이라 했지만, 오래된 아파트여서 인지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지난번에는 위층에서 생긴 누수 때문에 연락이 왔다. 우리도 여행객을 받는 숙소일을 하는지라 서울에 바로 올라와 볼 수가 없어 모든 관리를 부동산에 일임했다. 그래서 부동산에 들릴 때는 늘 고맙다는 표시로 음료수 박스를 하나 산다. 그리고 세입자 집 앞에도 먹을 것을 두고 온다. 보통 여름이면 수박, 겨울이면 딸기 같은 과일이다. 내가 세입자와 연락을 하거나 무언가를 주면 부동산 주인인 경희는 매번 그렇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면 나는 매번 그렇게 답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혼자 살면 아마 과일을 잘 챙겨 먹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매번 과일을 샀다. 어쩌면 민우에게 하고 싶은 행동을 그 집에 하고 오는지도 몰랐다.
그날도 모임에 가기 전 마트에 들러 딸기와 음료수 한 박스를 샀다. 집 앞에 딸기를 놓고 세입자에게 전화해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부동산을 들렸다.
“매번 이런 거 안 사 와도 된다니까.”
음료수를 탁자에 세 개 빼놓고, 나머지를 냉장고로 집어넣던 경희가 이어 말했다.
“아, 나 민우 봤잖아.”
“어디서?”
나는 경희의 말에 바로 물음을 던졌고 서서 이것저것을 살펴보던 남편 역시 시선을 경희에게 옮겼다.
“저번 달이었나, 길 지나가다가. 못 알아볼 뻔했어. 살이 많이 빠졌더라고.”
마음에 돌덩이가 또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의 자식 안부를 남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은 생각보다 마음이 아픈 일이다. 자꾸 입술이 말랐다. 냉장고에 음료수를 다 넣고 앉은 경희는 이 근방의 요즘 집값을 이야기했다. 전세 매물이 이제 별로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앞에 있는 음료수의 뚜껑을 땄다. 경희가 말을 이어갈 때마다 계속해서 음료수로 입술을 축였다.
창신동에서 저녁 모임을 하는 내내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선생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축하해준 것 빼고는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 얹힌 듯하여 차 안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를 계속해서 눌렀다. 남편은 이런 나 때문인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니, 그놈 자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부모인데. 잘 살고 있다고 연락은 하며 지내야지.”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는 남편 역시 속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라진 민우를 상상했을 것도, 누구보다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남편은 한옥 리모델링을 주도해서 했다. 매일 살펴보고, 이 부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던지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많은 애를 썼다. 그리고 집의 형태가 갖춰지자 제일 먼저 중정에 나무 하나를 심었다. 귤나무 한 그루.
마을 이장님과 화원 사장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장님, 한 그루만요?"
"여러 그루 심어도 될 거 같은데."
"아니면 앞마당에도 심어도 되고요.”
“한 그루면 됐어요. 우리 자식이 하나라.”
남편의 말에 알 수 있었다.
이 나무는 민우를 기다리겠구나. 언젠가 돌아올 민우를, 우리와 함께 기다리겠구나. 이 나무에 귤이 열리면 민우가 돌아와 같이 귤을 따고, 또 세 식구가 앉아서 귤을 먹었으면 좋겠다. 손이 노래질 때까지 먹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민우는 오지 않았다. 많지 않은 귤이지만 바구니에 쌓아놓고 메모를 붙였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민우를 위한 귤은 대부분 여행객들의 간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