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 04

연재 소설

by 오 지영

<민우>


어릴 적 학교에서 우연히 시작된 따돌림은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집 말고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집으로 빨리 돌아올까 생각하며 걸었다. 그날은 현장학습이 있던 날이었다. 모두 짝을 지어 다닐 것이고, 나는 또 혼자가 될 것이고, 혼자가 된 틈을 타 괴롭힘을 당할 것이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예고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여태껏 다물고 있던 입을 겨우 열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 학교. 내 말은 가볍지 않았는데, 돌아온 것은 가벼운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학교를 왜 안가.”

“그냥, 오늘만 안 가면 안 돼?”

“박민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방 챙겨. 내려줄 테니까.”



따돌림은 다행히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계속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어디선가 본인의 인생을 잘 살고 있고, 이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보다 재밌는 것이 많았을 테니까. 아니, 어쩌면 새로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관심 밖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계속 그 기억 속에 살았다. 176cm. 내 키가 고등학교 때 멈춘 걸로 봐서는 아마 내가 계속해서 그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가 지나도 여전히 열일곱이었다.


물론 내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들. 내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매번 의심했고, 경계했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쌓는데 결국 실패했다. 모나게 굴어서일까. 또 누군가는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러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떤 자리든 박차고 나와버렸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았다. 밥도 먹고 TV도 보고, 게임도 했다. 하지만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 생각이 깊어질 때면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으로 모자라 글로도 남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은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을 복기하는 차원이었다.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반성했으면 싶었다. 그게 아빠든, 엄마든, 가해자든 누구라도. 그때로 돌아가 날 향해 낄낄 거리던 목소리, 옥상에 서서 밑을 바라보던 모든 기억, 생각하기 싫지만 여전히 떠올라 괴롭던 장면들을 끄집어내어 글자로 옮겼다.


글을 1주일쯤 올렸을까. 공감 개수가 3개가 되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있었다.


2주쯤 지나자 처음으로 댓글이 달렸다.


[저도 비슷한 상황인데, 혹시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질까요?..]


안 괜찮아집니다. 저는 이 뒤로도 몇 번이고 죽을 결심을 한다고요,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답을 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다 네 글자를 적었다.


[ 조금은요. ]


거짓말을 했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는 글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뒤로도 글을 썼다. 이제는 글을 쓰는 족족 사람들이 공감을 눌렀다. 매일 밤 달린 댓글들을 몇 번씩 반복해 읽었다.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그래서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여러 댓글 중 눈에 띄는 댓글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woo님이 미워하는 건 누구예요? 가해자인가요? 부모님인가요?]


나는 누구를 미워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가해자들을 미워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심지어 너희와 대화도 몇 번 해보지 않았는데 왜 나를 표적으로 삼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다. 가해자들과는 이제 마주 칠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증오의 화살표를 부모에게 돌렸다. 왜 한 번도 나한테 괜찮냐고 묻지 않았냐고. 왜 내 걱정을 하지 않았냐고. 왜 나를 방치했냐고. 왜 맘대로 죽게 두지 않았냐고.


내 증오가 어디로 향했는지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에서 나의 화살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에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내가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왜 학교에 가기 싫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다. 부모니까. 하지만 말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간을 돌린다 해도 얘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의 표정을 보고, 나의 말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또 알아주길 바랄 것 같았다.


블로그에 공감 개수가 늘고, 댓글도 늘면서 나는 더욱더 글 쓰는 것에 집중했다. 집에 처박혀서 계속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한 어린 날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집 앞에 담배를 사러 나갔다 돌아오며 과일가게의 귤이 보였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담배만 태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죽음을 앞두고 귤을 먹을까 말까 고민한 것이 우습다 생각하면서.


찬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며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자 갑자기 오랜 기억 하나가 스쳤다.


겨울이면 집에는 항상 귤이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집 앞에 귤 트럭이 왔다며 한 손 가득 귤 봉지를 들고 왔다. 귤 봉지가 두 개가 되던 날, 이걸 누가 다 먹어. 했을 때 네가 다 먹지, 하고 동시에 답했다. 우리는 웃었다.


핸드폰을 열어 숨김 버튼을 눌렀다. 숨겨놓았던 아빠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귤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조그만 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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