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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19. 2023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

빛이 나는 이유.

까만색 카니발이 들어온다.

보조석에 키크신 할아버지가 먼저 내려 뒷문을 여니

부인인 듯 보이는 할머니와 나이차이가 제법 나보이는 두 손녀딸

며느리라 하기엔 편해 보이는 걸 보니 딸 인듯한 여자.

할아버지는 이 여인들이 들어오기 편하도록 문을 열고 기다리신다.

눈이 땡그랗고 야물어 보이는 7살쯤 보이는 저 숙녀에게 눈짓으로 

어디에 앉을지 선택권을 내어주신다.

그 아이는 그 눈짓에 자기 자리를 정한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맞은편에 자리하시며 오래되었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벗어 반으로 접어 의자에 걸쳐

놓은 후 그 손녀에게도 한쪽 눈썹을 찡긋하시니 그 아이도 스스로 

코트를 접어 의자에 걸친다.

둘은 어떤 말 없는 신호를 주고받듯 미소를 건넨다.

염색하지 않은 짧고 단정한 희끗한 머리.

군살 없는 몸매와 턱선

젊어서는 대단했을 깐깐한 외모.

내 짐작으로는 직업 군인 이셨겠다 생각이 든다.

곧게 뻗은 허리가 얼마나 강직했는지 까지 보인다.

식사 내내 손녀들의 관심사와 요즘은 무엇이 재미있는지에 물으시며

오! 그래? 그랬구나. 유머 한 스푼 웃음리액션한 보따리 

감탄사와 의문사만을 내시며 손녀딸들이 스스로

얘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잊지 않고 그 숙녀에게 맞는 탬포로 고기를 올려놓는다.

문득 툇마루에서 아버지 발길에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떨어졌던 밥상과

널브러진 나물들을 치우던 내 모습.

누구도 그 어린 여자아이에겐 관심도 애정도 쓰다듬도 보둠움도 주지 않던 그곳

 서걱서걱 무 써는 냉랭함이 일 년에 반년은 벌어지는 이곳.

눈이 뜨거워지고 가슴은 잠시 통증이 인다.

모두가 바라봐주고 들어주고 웃어주는 저 작은 아이에게서 나오는 빛에

내 마음은 더 서글퍼졌다.

그 온기가 그 따뜻함이 그 다정스러움들이 이런 느낌이구나.

차에서 내린 저 아이에게 눈이 가던 이유가 저 사랑에서 나온 빛나는 이유였음을 알았다.

누군가의 사랑에 누군가는 눈물짓는 세상.

그 꼬마숙녀는 유독 두 아이엄마가 된 딸의 미니어처다.

저 아이가 어려서 더 눈이 가겠지만 저 노 부부는 안다.

그때 그 시절  당신의 딸 모습이라는 걸.

그들은 늙었지만 저 꼬마숙녀의 모습에서 그때 그 시절을 함께 꺼내 추억하고 계신다는 걸

노부부는 깔끔

하고 정갈한 식사로 감사함을 표하셨고 꼬마 숙녀와 할아버지는 미소를 보내며 코트를 입는다.

문을 열어주며 네 여인들이 나갈 때까지 문고리를 잡아준다. 잘 드셨다는 인사와 함께 가족에게 보내던  미소의 여운을

남기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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