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는 아이가 5살 때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8시 30분까지 수영장에 도작하여 9시 주부수영을 다녔다.
월수금 수영을 다니다 보니, 언니들과도 친해져서 한 두 번 밥도 먹고 차도 마시러 다녔다. 그때는 어른들의 모임에 목말라 있어서 누가 모이자 고만하면 신나서 다 참석했다.
시간이 지나고 수영 연차가 늘면서 수영장 회식은 내가 담당하게 됐다. 나이도 어렸고(수영장에서만이다), 나 역시 적극적이라 장소 알아보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수영장 회식 때는 2019년 기준으로 음식비가 1만 원을 넘으면 언니들이 싫어했다. 그래서 막걸리를 무제한으로 주는 낙지집, 코다리찜집을 자주 갔다. 그런데 소주파와 맥주파의 싸움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소주 마시는 사람은 1병만 마시면 되는데 언니들 표현으로 맥주 마시는 것들은 4~5병씩 마시니 술값을 따로 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나도 맥주 파라 내심 미안했지만 회비에 차등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술은 안 먹고 밥만 먹는 사람에게 회비를 안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영선생님도 오시는데 선생님이 맥주를 좋아하셨다.
한 번은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그날 당연히 소주와 맥주의 논란이 또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쏘맥을 말아 전부 건배를 할 때까지는 좋았다.
다들 술에 취했고 회비를 걷으면서 소주 마시는 언니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식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회비를 많이 거는 것이 미안했다.
하긴 그날 우리는 50병이 넘는 맥주를 마시긴 했다. 수영선생님들은 체력이 좋아 술도 잘 드시고 고기도 잘 드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몇 번의 회식을 거치다 코로나가 찾아왔다. 나는 수영을 더 이상 다니지 못했고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에 다시 수영장에 갔다. 이제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혼자 있어도 되는 나이라 새벽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제버릇 개 못준다고 6시 수업에서도 다양한 회식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여긴 주부반이 아니라 직장인 반이라 남녀가 섞여서 운동을 한다. 운동할 때는 수영하느라 서로 대화 한 번 하지 못했는데 회식자리가 신선하고 즐겁다. 최근에 이것도 몇 번 하니 지루해졌다고 해야 하나 다시 뜸해지고 있다.
그래도 가끔 정모를 하며 단합을 외쳐본다. 수영할 때 이 정모가 도움이 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신 마음의 위안이랄까 함께 운동할 때 기운이 난다.
단지 아는 사람들과 수영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알고 보면 수영은 혼자 하는 운동인데 힘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