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좋아서 무작정 시작하다!
... 이 글은 이전의 글을 브런치북에 게시를 위해 재편집하여 썼습니다.
처음 빠졌던 만화는 TV에서 본 '들장미 소녀 캔디'였다. 그 이후 만화책인 '캔디캔디'를 끼고 살았다. 어릴 적부터 뭐 하나에 빠지면 깊이 몰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 이후에 읽던 순정 만화들이 너무 재밌었고 그 만화를 따라 그리다가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만화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은 모르게 했는데 국영수 학원비를 받아 만화학원으로 갔던 것 같다.
만화학원에 매일 가서는 그림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마루펜으로 선연습만 죽어라고 했다. 오른손 중지의 굳은살은 그때 생긴 것이다. 손가락이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연습하면서 선을 자없이 일자로 그리는 것을 잘하게 될 즈음 드디어 만화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연습했던 그림은 일본 만화들이었다.
세상 살면서 그렇게 재밌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만화를 열심히 그리던 어느 날 살던 연립의 앞동 언니의 추천으로 문하생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만화를 본격적으로 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만화가의 꿈을 가지고 화실에 합숙형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매일 지우개질과 청소, 커피 타는 일 등의 각종 허드렛일은 막내인 내가 해야 했다. 계속되는 지우개질에 팔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잡일도 힘들기만 했다. 할 일을 끝내고 저녁에 따로 만화연습을 해야 했는데 마감이 있을 때는 밤샘도 많이 하기도 하고 뻗어서 잠자기 바빴다.
집에도 못 가는 합숙 생활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눈치가 꽤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때는 더 어리숙하여 상황파악을 잘하지 못하니 늘 구박대상이었다. 그리고 20만 원 정도 되는 급여로는 생활이 안되었다. 뭐 거의 일만 하니 돈을 쓸 일은 별로 없었지만 급여가 너무 박해서 열정이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쯤 하고 나니 진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웹툰작가처럼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물론 재능이 있어 혼자서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빛을 발하지만 나는 그쪽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질이 없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긴 한데 좋아하는 것 말고 잘하는 것을 해야 성공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도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그래도 1년은 버티리라 생각했는데 3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만화화실을 나온 이후 만화가가 아닌 애니메이터가 되자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만화가의 꿈을 놓지 못한 나의 미련이 애니메이터로 이끌었다. 그래! 만화가보다 애니메이터는 상황이 좀 더 나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는 도구인 연필 깎기, 종이 고정 셀부터 연필, 지우개까지 전부 내가 사야 했다. 워낙 박봉이여서인지 이직률이 높아서인지 분실이 많이 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할 도구가 없이는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만화화실을 나와서 한 달을 쉰 상태라 돈도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3만 원 정도를 빌려서 연필 깎기를 사서 출근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요청하면 될 것인데 그때는 부모님이 반대할 거라는 생각에 친구에게 빌리는 편이 마음 편하다 생각해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첫 출근 후 점심값도 없고 부모님에게 손 벌릴 형편이 아니었으니 그냥 생으로 굶고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던 중 나에게도 사수가 생기고 사수인 언니가 왕뚜껑 사발면에 커피 우유를 사주었다. 거의 매일 왕뚜껑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한강에 나가 햇볕을 쬐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기억으로 남는다. 내 옆자리가 사수 언니가 있는 책상이었는데 그 책상 위에는 늘 워크맨이 놓여있었다. 언니가 자리를 비우면 이어폰을 꽂고 몰래 음악을 들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여행스케치의 노래였다. 그때부터 나도 여행스케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화 문하생을 거쳐 애니메이터로 6개월 정도 근무를 하던 중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편집디자인 학원 홍보 전단을 보게 된다. 우연히 스쳐 지나갔는데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서 시간이 남으면 도서관에 가서 편집디자이너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봤다. 그땐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도봉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이곤 했다. 물론 지하 매점에서 라면은 꼭 먹었다.
그때 보던 책들을 생각해 보면 주로 직업 관련 책들을 많이 봤다. 직업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그것을 알아보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디자이너로 일하던 곳 중에 대학교 취업, 진로 가이드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적성에 딱 맞는다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편집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편집디자이너로 살고 있지만 편집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한 일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다른 일도 하고 싶어서 늘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