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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ANNE Nov 03. 2024

충무로 블루스

20년 차 편집디자이너의 충무로에서 먹고사니즘

... 이 글은 이전의 글을 브런치북에 게시를 위해 재편집하여 썼습니다.




충무로 입성기


충무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건 23살 때였던 것 같다.

22살에 대학로에 있는 디자인학원을 1년을 다녔고, 그 이후 취업이 되지 않아 편집디자인 학원을 6개월을 더 다녔다. 이 기억이 정확한지는 사실 모르겠다. 20대 초반 그즈음 나는 일을 시작했다.


편집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만화가가 꿈이었던 내가 다니던 애니메이션 회사 근처 전봇대에 붙어 있던 편집디자이너 학원 광고를 본 이후였다. 기술을 가지면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나는 늘 박봉에 시달렸고(박봉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적은 용돈 수준이었지만), 일을 열심히 해도 점심을 사발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애니메이터를 그만두고 모형회사, 한복가게, 핸드폰가게, 식당, 필름현상소, 텍스타일디자인회사, 시트 컷팅가게 등 다양한 회사를 전전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월급은 70만 원을 넘지 못했다.

돈을 벌고 싶었던 나는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는 게 힘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도 많이 주는 그런 회사는 없는 것일까? 내 고민은 늘 비슷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천성이지 싶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은 불안감에 디자인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대학로에 있는 디자인학원을 다니면서 밤에는 카페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디자인을 배우고 충무로를 나왔는데 디자인은 배웠지만 막상 프로그램을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라서 취직이 힘든 상황이었다.


다시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일러스트, 포토샵, 쿽을 배웠다. 이제 드디어 신입사원으로 디자인 회사에 입사할 자격이 생긴 것이다.


충무로 생활기


처음 들어간 회사는 한 게임 관련 잡지사였다. 그리고 이곳은 충무로가 아니고 강남이었다. 사수도 없고 사장, 기자, 나 이렇게 셋이 근무를 하고 같이 사무실을 쓰는 팀이 있었는데 게임프로그래머 회사였다. 이때는 모찌꼬미라고 했는데 지금의 공유사무실 정도를 의미한다.

그렇게 근무를 시작했고 당연히 디자인 툴만 다룰 줄 아는 나는 디자인을 할 수 없었다. 사수가 없이 일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유로워 좋았지만 내 작업이 어디로 가는지 나도 알 수 없으니 그냥 예술가처럼 작업을 이어갔다. 디자인은 모르겠고 매달 열심히 마감에 맞춰 책 한 권씩을 혼자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속도도 늘고 작업도 어느 정도 잘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툴을 잘 다루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월간지의 특성상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마감기간이라 집에 못 가고 밤샘 작업을 계속했다. 당연히 면접 볼 때 철야를 한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밤을 새워서 근무하는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았다. 만화문하생 때 밤을 너무 새워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거기에 못생기고 늙은 기자가 자꾸 치근덕대는 바람에 근무 의욕이 떨어져 결국 퇴사를 하고 자동차광고 디자인 회사를 들어갔다.

이때부터는 경력직이 되어 일자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이도 경력도 회사가 딱 좋아하는 일 년 차다. 그렇지만 얕은 실력이 늘 문제가 되었다. 지금도 내가 진입 못하는 일들이 있다. 광고, 전시, 패키지 등의 일이 그렇다.


자동차광고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광고 러프 스케치에 맞춰 종일 슬라이드(이미지 사진)를 찾고 컬러정보 매칭 자료를 준비하고 타이포 텍스트를 오리고 잘라 붙여놓고 메인 디자이너에게 자료를 준비해 주는 보조 디자이너 역할을 했다.

메인 디자이너가 마을에 들지 않는다고 이거 저거 수정을 요구하면 밤을 새워야 했다. 이제부터는 밤새는 일도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디자인 책을 수백 권을 뒤지고, 그래도 없으면 충무로 메인 골목이었던 데코브레인 골목의 디자인 서점에 가서 책을 뒤져서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디자인 스케치 연습을 하고 컴퓨터에 옮기는 일도 부지런히 했다.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걸 다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디자인 회사도 몇 군데 더 옮겨 다니다 결국 밤샘작업이 힘들어 독립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밤잠이 많아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밤을 새기보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하는 게 더 컨디션이 좋다. 그때 나이 25살이었던 것 같다. 독립 후 밤은 더 많이 샜지만 돈도 더 많이 벌었다. 돈 버는 일이 즐거워서인지 라꾸라꾸 침대를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도 거기서 자면 깊이 잠들까 봐 의자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일의 성과랑 돈의 비율이 맞아야 행복했던 것이다. 그리고도 나는 가끔 프리랜서 생활이 지겨워지면 회사를 들어갔다가 다시 충무로를 나왔다를 반복했다. 사무실 이사만 해도 10번은 한 것 같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나는 정착을 잘 못했다. 아마도 연륜이란 게 쌓이지 않아서일까? 싶지만 여전히 나는 이사를 즐겨한다. 이제는 역마살도 내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충무로에서 20년이 넘게 지내고 있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지금도 충무로는 인쇄 때문에 자주 들락거린다. 편집디자이너로서의 삶과 디자인 에피소드, 창업과 동업, 출산 후 재택근무를 하게 된 배경, 디자인 이야기, 2000년대 초반의 기획사무실 풍경, 충무로 맛집, 굿즈 제작, 책 출판, 캔바로 디자인하기, AI 작업, 캔바로 디자인하는 블로그 운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만한 것이 되길 바라며 편집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추억을 나누고 싶다. 

그 시절 충무로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들을 그리워하며 글을 시작한다.

특히 나의 특별한 충무로 동지 선옥이 언니와 지금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벗 정실장 님을 위해 충무로의 추억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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