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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5코스

제주살이 28일 차

by 도도쌤

아이들 유치원 데려다주고 무작정 차로 올레 5코스 시작점을 찍었다. 38분. 생각보다 제법 멀다. 거리상으로 보면 '서귀포'에서 '남원포구' 가까워 보이는데 거리가 꽤 멀다.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 이 시각이면 아이들이랑 정신없이 교실에서 1교시 수업하고 있을 건데, 지금 내 앞엔 조그만 포구와 예쁜 다리가 보일 뿐이다.


아내가 몸이 조금 안 좋아 제주살이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들 없이 홀로 제주를 맞았다. 혼자의 자유, 이거 뭐 뭐라고 설명이 안 된다. 나만 챙기고 나만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무한한 자유 앞에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바다는 또 무엇인가?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이런 시간을 감히 마주해도 되는 것인가? 사실, 모든 게 다 아내 덕이다. 아내 만난 덕이다. 하하하하하!


사람도 없고 바다 보고 뚜벅뚜벅 걷기에 참 쉬운 코스다. "우와! 여기 외국 바다 같다." 하며 자전거 무리 속의 한 분이 외친다. 나도 덩덜아 바다를 다시 보게 된다. '나도 아내랑 다음엔 자전거 타고 와야겠다. 이 길 너무 멋지다.' 속으로 생각하며, 오징어 냄새 향기롭게 풍기는 이 길을 걷는다.


가다 보니, 바다 해변길로 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남원 큰엉 해안 경승지? 예쁜 길인가?" 별 기대도 없이 걷는데 뭐 바다와 산(나무 해안 숲길)이 다 공존한다. 왼쪽으론 바다도 보고 앞으로는 숲 속 나무 냄새를 맡으며 '와 멋지다. 바다 산을 다 볼 수 있는 이 길 너무 좋다.' 하며 걷는데 갑자기 예전에 알 던 50대 후반 부장님이 했던 말에 혼자서 빵 터진다. 아이들 보고 주말에 어디 가자고 하면 다 큰 아이들이 이렇게 얘기한다고, 갈 데가 없다고.


"바다 산 빼고 다!"


혼자서 히죽히죽 웃으며 걷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다. '뭔 일 났나?' 싶어 궁금해 가 보는데 사진 줄이다. 나무와 자연이 만든 '한반도' 배경을 뒤로해서 해맑게 브이 하며 사진을 찍고 계신다. 난 혼자라 찍어주는 사람도 없고 사진만 달랑 찍고 지나간다. 오른쪽으로 '코코몽 에코파크'랑 '금호 제주 리조트'가 보인다. 코코몽은 코로나 풀리고 나면 꼭 오고 여기 리조트 꼭 한 번 오리라 마음먹는다.


'어 갑자기 웬 바다 돌길?'

그렇다. 사람들이 저 앞에서 바다 돌길 위로 가고 있다. 최대 난코스다. 바위를 올라갔다 내려오고 숲을 지나 다시 바윗길, 정말이지 제주의 바닷길을 구석구석 다 밟아 보며 이 시간에 마음껏 취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걸었던 이 길, 또 뭔가가 날 깜짝 놀라게 한다. 아기자기한 '몽돌 돌탑'이 길을 만들고 있다. 나도 돌을 하나 얹으며 '집 좀 빨리 팔리기를.'하고 간절히 빌어본다.


1시간 넘게 걸었나 슬슬 다리가 아파오고 길도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바다 길은 길로 밖에 안 보인다. 배도 고프고 이 때다 싶어 저번에 '사려니숲길'에서 간절히 생각나던 '짱구 과자'를 하나 뜯는다. 이건 뭐 또 설명이 안 된다. 과자가 주는 묘한 달콤함에 갑자기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고 다리에 힘이 불끈 솟는다. '짱구 파워'로 이 허기와 외로움과 지침을 이겨낸다.


천천히 걷다가 쉬고 했는데도 왼쪽 무릎이 안 좋다. 출렁이는 파도와 세찬 바람을 맞으며 고민을 한다. 목적지 '쇠소깍' 그게 또 뭐라고 내 몸을 일으킨다. 남원 포구 올레길 초입에서 봤던 분들도 이 길을 걷고 있다. '그래 가는 거다! 한 번 해 보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시 잡고 걷는다. 가다가 먹은 '보말칼국수'의 뜨끈함도 한 몫한다. 힘이 다시 불끈 솟는다.


그렇게 힘을 내어 '위미항'을 지나 '신례 2리' 공천포 바닷길을 지난다. 쇠소깍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장장 4시간 이상을 걸었다. 저 멀리 쇠소깍 에메랄드 용이 사는 바닷물이 보이고, 카약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 쇠소깍도 효돈천과 만나는 곳인 걸 처음으로 알게 된다. 바닷물 때깔이 예술이다. 바위는 또 어떻고 웅장하고 장엄하기 그지없다. 그 위를 카약으로 타는 사람들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왜 쇠소깍 쇠소깍 하는 지를 알았다. 예전에 그냥 이곳만 왔을 때랑 느낌이 사뭇 다르다. 4시간이라는 힘듦을 이겨낸 에메랄드빛 결정체가 바로 나한텐 '쇠소깍'이었던 것이다.


사실, 요즘은 미리 여행지를 가기 전에 블로그 사진과 글을 잘 안 본다. 목적지만 찍고 간다. 먼저 갔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나면 확실히 감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냥 가 본다. 역시 안 보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왔다면 확인이겠지만 안 보고 왔기에 처음 왔기에 이 세계는 지금 나에겐 개척할 탐험이고 도전이다. 미지의 세상과 만난 사진과 영상들은 아래에 두겠다. '아 대충 이런 곳이구나!'를 알고 싶은 분들은 대충 보고 오면 좋겠다.


걷다가 문득 생각난 시도 하나 첨부한다. 제목은 뭘까요? 하하하하.


그렇게 더워서 땀이 나서 몸에 딱 달라붙을 땐
그렇게 귀찮고 배기고 확 벗어버리고 싶더니
날이 갑자기 차갑고 바닷바람이 쌩쌩 부니
그렇게 고맙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하나 더 입고 싶을 지경이다.
그놈의 사람 마음, 날씨만큼이나 요상스럽다.
-ㄴ ㅂ-



이 모든 아름다운 시간을 감히 맞게 해 준 아내에게 고맙고 고맙다. 한 시간은 혼자서 걷기 딱 좋았는데 그 이후엔 아내가 생각났다. 다음엔 꼭 다시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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