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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Mar 22. 2022

한라산 둘레길 5구간(수악길)

제주살이 29일 차

눈을 감는다. 차가운 바람이 슈우웅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검은흙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탐스럽다. 연초록빛 이끼는 바위와 나무를 휘감아 버린 지 오래다. 널브러진 현무암 바위와 검은 흙 위로 튀어나온 알통 같은 뿌리들이 사정없이 펼쳐져 있는 이곳.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다시 살아나는 이곳. 한라산 둘레길 5구간이다. 내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비경을 드디어 찾았다. 바로 이곳에서.




281번 버스에서 내렸다. 오전 10시 55분. 여긴 한라산 둘레길 5구간 수악길이다. 한라산 둘레길이 여기 한 군데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지도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구간들이 많다. 다른 곳도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 거린다.


어제 밤새 내린 비는 눈이 되어 한라산이 다시 하얀 모자를 썼다. 눈바람이 제법 차갑다. 지도를 보니 오른쪽 둘레길로 가야 되는 모양이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삼나무길의 신비에 압도당한다. 처음부터 너무 센 거 아닌지 모르겠다.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맑은 공기는 처음 마셔본다. 숲을 통째로 마시는 기분이다. 숲 냄새와 비 냄새가 함께 섞인 이 향기. 사람 손길이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공기가 나를 신선으로 만든다.


나뭇가지에 분홍 레이스가 예쁘게 달려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에코힐환상 숲길 한라산 둘레길"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딱이다. '환상 숲길' 맞다. 이런 길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동안 아름다운 길은 수없이 가 보았지만 인간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은 처음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태곳적 신비를 갖춘 환상적인 숲 길이다. 이런 길을 내가 다 찾았다니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보물을 찾은 느낌이다.


걸으면서 순간 느낀 기분을 메모장에 다음과 같이 메모를 해 놓았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맑디 맑은 공기가 몸속 가득 차는
뭐라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산짐승이나 백록(하얀 사슴)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만 꼭 알고 싶은 환상의 길
바로 여기다.
여기가 바로 진짜 제주도다.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곳
감탄을 하고 감탄을 하고 또 감탄을 해도 모자란다.
지금껏 겉만 판단해서 미안하구나!
'이건 뭐 말로 설명이 안 된다!'

혼자 다니니 조금 무서울 정도로 인적이 없다. 꼭 여기 올 때는 누구랑 같이 와야 하겠다. 이 긴 코스를 걷는데 마주친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아내에게 그냥 한라산 둘레길 어떤지 살짝 둘러만 보고 온다고 했는데...'

'한 시간 걷고 중간에 돌아 나왔어야 했는데...'


'이승악' 오름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너무 무리를 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길은 너무 아름다운데 높은 계단에 힘이 든다. 집에서 챙겨간 오렌지와 포도 때문에 힘을 얻는다. 뭐 중간중간 멋진 풍경도 많이 만났지만 어제 강행군에 이어 오늘까지. 다리가 너무 아프다.


다행히 정말 운 좋게 '이승악' 정상에서 '이승악' 주차장에서 올라오신 분을 만나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다시 온 길로 가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내려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길에서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들을 만났다. 풍경이 참 이색적이었고, 이 길 정말 나중에 벚꽃 피면 또 다른 나만의 비경 장소가 될 벚꽃길이 될 것 같았다. 꼭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한다.


오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영상으로 남겨 놓았다.

한라산둘레길 5코스 입구
한라산 둘레길 5코스 원시 자연
험준한 바위에 감탄을 하다.
이승악오름 정상에서의 한라산 풍경
총 걸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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