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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5코스, 2시간 코스 소개하기(점심 맛집 포함)

제주살이 35일 차

by 도도쌤

딱 1주일 전이다. 혼자라는 자유에 마음껏 취해 걸은 5코스 길. 바다와 나무 모든 게 완벽했었다. 4시간 반이라는 시간과 아픈 무릎만 빼면 말이다. 좋았지만 너무 무리했던 올레길 5코스. 두 번 다시는 올레길을 완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아내와 올레길 4코스를 가기로 결정했다. 9시 28분 급행버스 시간에 맞춰 열심히 달려갔는데 빨간 신호등 앞에서 빨간 버스가 휑하니 가버렸다. 다음 버스를 타려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기에 발만 동동 구르며 한참을 버스 꽁무니만 쳐다봤다. 기다리기 싫은 아내와 나, 가장 빨리 오는 남원행 버스를 타고 환승하기롤 결정한다. 효돈초를 거쳐 공천포와 위미항을 지나 남원포구까지 가는 길이다.


버스가 효돈초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사방에 벚꽃이 쫙 펼쳐져 있다. 아내 101번 급행 버스를 놓쳐 기분이 우울했는데 벚꽃을 보고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과 함께 올레 5코스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4코스 가기로 했던 계획을 바꾸고 남원포구 입구에 하차했다.


물과 빵과 커피를 사서 올레안내소에 들렀다. 스탬프 책자가 있는지 물었는데 음.. 비싸다. 20,000원이란다. 제주 1년 사는 동안 올레코스 한 번은 다 돌아다닐 건데 도장도 찍고 명예 배지도 받고 싶어 케이스 포함해서 구입했다. 안내소 앞에서 4코스 종점과 5코스 시작점을 찍었다. 도장 찍는 느낌이 재미있다. 뿌듯하다.


한 번 와 본 게 크다. 코스는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4시간 반 동안 쇠소깍까진 절대 안 간다. 딱 중간 지점까지 가서 도장만 찍고 점심 먹고 올 거다. 하하하하하.

오늘의 코스

남원포구 입구-해안길 따라 걷기- 큰엉 해안가 걷기-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중간 지점)-은혜네 맛집(점심)


혼자라는 무한 자유의 기쁨도 컸지만 아내와 손잡고 걷는 알콩달콩한 소박한 기쁨도 크다. 해안길 따라 걷는데 아내도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연신 부른다. 난 해안가 벽에 적혀있는 시 구절이 마음에 들어 큰 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는다. 소개한다. 좋다. 나처럼 큰 소리로 읆으면 더 좋다. 하하하하하.


이런 사람과 만나라!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만나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자라는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과 만나라.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될 것이다.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사람과 만나라.
기준 잡힌 인생을 살 것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과 만나라.
풍요롭게 살아갈 것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사람과 만나라.
온 주위를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라.
가슴 따뜻한 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생각만 해도 '대단하다' 싶은 사람과 만나라.
시대를 이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침묵을 즐기는 사람과 만나라.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과 만나라.
멀리 있는 복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다시 찾은 '큰엉'.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저번에도 좋다고 느꼈는데 또 좋다. 파도 소리와 나무 터널이 주는 안정감이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들고 세상 시름을 잊게 만든다. 5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희한하게 이렇게 둘이서 좋은 데만 구경하면 엄마가 생각난다. 코로나도 걱정되고 해서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생전에 몸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시는데 허리가 좀 안 좋아졌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다. 제주 내려와서 한 달 정도 우리 집에서 푹 쉬면서 여행도 하라고 했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그걸 이해하는 아내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


이 길을 다 와 봤기에 어디가 멋진 풍경이고 사진 찍기 좋은 지 머리에 그려진다. 저번에 마음속에 담아 뒀던 의자 두 개가 있던 그곳. 아내와 나 둘이서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아무리 해도 구도가 안 나온다. 용기를 내어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한테 부탁을 드렸다. 일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가셨다 폰을 위아래로 돌리시면서 엄청 정성껏 찍어 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이 사진을 보니 여기 아내와 둘이서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사진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려서 찍는 것보다 여기 풍경이 백배 더 멋있다. 하하하하하.



'큰엉'을 지나서는 이제 평범한 제주 바닷길이다. 화장실도 한 번 가고 근처에서 앉아 간식도 먹는다. 힘을 내어 걷는데 다리가 아파온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 중간지점이 생각보다 멀다. 겨우 도착해서 중간지점 도장을 찍는다. 쾅!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점심식사. 일주일 전에 혼자 걷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찾은 위미 하나로마트. 그 맞은편 조그만 식당 안은 다 차고 밖에도 사람이 두세명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음.. 이 집 맛집인가 보네! 다음에 와야지' 하면서 슬쩍 지나갔는데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은혜네 맛집>에 도착을 했다. 문을 스르륵 여니 안에 아무도 없다. '엉? 여기 저번에 사람 많았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앉아본다.' 아내는 손칼국수, 난 김치찌개를 시켰다. 이제야 검색을 해 보니 이 두 메뉴가 대표 메뉴란다. 모르고 주문했는데 대표 메뉴 두 개를 골랐다. 반찬이 나오는데 집밥 반찬이다. 콩나물도 간이 딱이고 감자는 달콤하다. 반찬 먹는 동안, 주인 어머님께서는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시는데 아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는다고 바쁘다.

드디어 도착한 김치찌개, 아내가 얼른 숟가락으로 맛을 본다. '캬!'소리와 함께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몇 년 같이 살다 보니 이제 표정만 보면 안다. 나도 얼른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본다. 얼큰하다. 딱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 맛이다. 그리고 이어 도착한 '손칼국수'. 아내 바로 맛을 본다. 표정을 모르겠다. 다시 맛을 본다. 그제야 '음'한다. 나도 맛을 보았는데 너무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맑고 삼삼한 해산물 맛이 나는 개운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다.


아내가 면발이 진짜 쫀득쫀득해서 먹어보라고 해서 먹었는데 진짜 '쫀득쫀득'하고 찰지고 맛있다. 역시 직접 바로 손으로 반죽한 게 이렇게 맛을 결정하는구나 싶었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아내에게 국물을 조금 얻어 남은 밥에 말아서 마무리지었다. 그릇이 깨끗하다. 아내 먹는다고 집중을 해서 말이 없었는데 다 먹고 나더니 한 마디 다.



"아! 너무 잘 먹었다. 아! 배부르다."


아내 그 말을 하고 일어나더니 주인 어머니한테도 이런다. "다음에도 올게요."하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은 것 같아 속이 너무 개운하다. 5점 만점에 4.5점이다. 그냥 딱 엄마가 해 주는 김치찌개 맛이랑 손칼국수 맛이다. 한 번 생각나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올레 5코스 점심까지 포함한 약 2시간 코스다. 10시 40분에 걸어서 1시에 밥을 다 먹었으니 말이다. 무리도 안 해서 다리도 안 아프고 눈 구경도 잘하고, 밥까지 맛있게 먹었다. 배도 부르니 벚꽃이 더 예쁘게 보인다. 봄에 제주 올레길을 찾는 분에게 꼭 추천하는 코스다.

봄엔 5코스 길을 여기로 넣어야 한다. by 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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