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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3코스(B)와 보말칼국수(점심 맛집 포함)

by 도도쌤

어제 눈앞에서 놓친 빨간 버스 101번을 오늘은 아주 여유 있게 탔다. 자리도 운전석 바로 옆자리 맨 앞이다. 버스여행 하기엔 최고의 자리에 앉았다. 서귀포에서 제주공항까지 그 먼 거리를 가는데 중간에 몇 정거장 안 거친다. 역시 급행이다. 멈춤이 없다. 쌩쌩 쌩 내 차보다 더 빨리 제주 남쪽을 달린다. 우리 아내 초록색 버스 타다 숨 막혀 죽을 뻔했는데 이건 뭐 하늘을 나는 수준이다. 아내와 나 너무 좋아 앞으로의 여행 기대로 가득 찼다


"앞으로 멀리 갈 땐 빨간 버스만 타자. 너무 좋다. 진짜 빨리 간다."

"진짜. 앞으로 이 버스 타고 성산일출도 가고 세화에 월정리까지 다 가 보겠다.

"금방 동쪽 싹쓸이하겠다."

"하하하하하!"


어디로 갈지 한참 고민하다 '신산 환승정류장'에 내려서 '표선 해수욕장'으로 걷는 올레 3코스를 선택한다. 빨간 버스 내릴 땐 그냥 내리면 요금이 추가된다고 하니 반드시 하차태그를 하길 바란다.


아내랑 둘이서 손잡고 신산리 마을길로 내려가는데 여기 주택들에 자꾸 눈이 간다. 크기도 아담하고 마당도 있고 조용하니 살기에 너무 좋을 것 같다. "여기 너무 좋은데 우리 여기 살까?"라고 말했는데 아내도 좋다고 그런다. 이러다 진짜 제주도 1년 더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순간 뭔가 노란색이 오른쪽에 쫙 펼쳐져 있는데 검은 돌담 안에 핀 노란 유채꽃은 과히 환상적이다. 제주도 내려와서 그렇게 유채꽃을 많이 봤는데 오늘 본 유채꽃이 지금껏 가장 예뻤다. 아내랑 나 둘이서 뭔가에 홀린 듯 또 보고 또 찍으며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아름다운 바닷길을 한 10분 걸으니 올레 중간 지점인 '신산리 마을카페'가 나온다. '잉? 벌써 중간지점? 오에 재수!' 올레 패스를 꺼내서 중간지점에 도장을 쾅 찍는다. '마을카페? 여기 뭐지?' 뭔가 싶어 궁금해 들어갔는데 안 들어왔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뷰가 뷰가 끝장이다. 게다가 아내가 시킨 바닐라라테 맛은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맛이 '이디야 커피' 맛이 날만큼 맛있단다. 내가 시킨 시원한 청귤 차도 제주를 마시는 것처럼 은은하게 달콤하다. 제주 내려와서 처음으로 아내랑 카페와 앉아 바다를 보는 건 처음이다. 다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 종일 책 보다 갈거라 다짐한다.


아내 기분이 상당히 좋다. 올레길 5코스보다 3코스가 훨씬 좋단다. 길이 평지인 데다 바다가 계속 펼쳐지고 중간에 목장도 나오니 시야가 확 트이고 걷기 너무 좋다고 한다.


"이 길 너무 좋다. 이 길 너무 좋다. 다음에 10번 정도 더 오고 싶은 길이다. 안 그래?"


그렇다. 끝없이 왼쪽으로 바닷길이 펼쳐지고 길은 평평해서 걷기에도 좋다. 그런데 체력이 안 좋은 나, 두 시간 정도 걸었나 슬슬 배도 고프고 날은 너무 덥고 힘이 든다. 게다가 모자가 없어서 얼굴은 따갑고 눈이 부셔 계속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표선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을까 했는데 힘을 내고 힘을 내어서 겨우 도착했다.

휴~~~


표선해수욕장은 차로 바로 와서 구경하는 게 아니다. 올레길을 걸으며 힘겹게 와야 그 매력에 흠뻑 빠진다. 저번에 아이들과 한 번 왔을 때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썰물이라 걸은 하얀 백사장에서 마주친 아기 게하고 살짝 인사도 나눈다. 다음에 또 보자.


3시간 넘게 걸었더니 배도 고프고 쓰러질 것 같다. 아내도 일찍 가야 할 곳이 있어 마음까지 바쁘다.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가게가 보인다. <당케 올레 국수> 집이다. 보말칼국수 전문집이라고 하는데 보말죽도 유명한 모양이다. 15분 넘게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맛집의 기운이 살짝 느껴진다.


사실, 총각 때 울릉도에서 먹은 <신애 분식>의 '따개비 칼국수' 맛에 넋을 잃어 '세상에 이런 맛이 다 있어!'라고 감탄을 감탄을 해서 여기 보말칼국수는 기대를 전혀 안 했다. 그런데 이건 뭐 국물이 찐하다. 보말이 죽 안에 제대로 들어가 있다. 같이 나온 무 장아찌와 같이 먹었는데 아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입에 후루룩 넘어간다. 가격이 죽은 12,000원이고, 칼국수는 10,000원인데 처음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먹을수록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국물이 찐하고 구수한 게 일품이다.



오늘도 좀 무리했다. 몸이 뻐근하다.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 대신 표선해수욕장 물놀이 장소는 봐 둔 데가 있으니 주말에 아이들이랑 와서 물놀이하고 게잡고 놀아야겠다.

*3코스 올레길(B), 걸은 장소들
신산 환승정류장-신산리 마을카페-농개-신천 바다 목장-배고픈 다리-표선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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