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코로나에 숨 한 번 제대로 쉬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를 탈출해 좋은 공기가 있는 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주도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미세먼지와 코로나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좋은 봄날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깝다. 산으로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아내와 나 집 근처인 '치유의 숲' 프로그램인 '숲 탐방'을 예약하고 드디어 해설사님과 함께 숲 탐방길에 올랐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치유의 숲에 오신 분들이 꽤 많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화장실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편백나무 피톤치드 향이 코를 찌르는데 여기가 화장실인지 천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이렇게 깔끔하고 나무 향기 나는 화장실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화장실이 안 가고 싶어도 꼭 한 번은 '치유의 숲' 화장실을 가 보길 바란다. 하하하하하.
입구 화장싵
지하 암반수가 나오는 쉼팡에서의 화장실
여기 숲길 코스가 꽤나 복잡하다. 그림만 봐서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다행히 해설사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니 코스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다. 무엇보다 제주어로 된 숲길 이름이 아주 인상적이다.
숲길 코스 설명과 숲탕방 코스
'가멍(=간다 ) 숲길', '오멍(=온다) 숲길', '가베 또롱(=가뿐한) 숲길', '쉬멍(=쉬면서) 숲길', ' 엄부랑(=엄청난) 숲길' 등 이름들이 너무 친근하고 재미있다. 사람 이름도 소중하듯 숲길에 이름을 붙였다는 건 이 숲길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일 게다. 그 아름다운 숲길 중에 제일 먼저 가는 숲길 '가멍 숲길'부터 시작한다.
꽃 이름은 사실 좀 관심이 있어 다음 꽃 검색에서 사진 찍어 이름을 알긴 했었는데 나무 이름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숲해설가 님의 설명 때문에 나무 이름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빨간 열매가 열리는 '백량금'나무, 해병대 나무라고 불리는 '육박나무', 이산화탄소를 엄청 많이 흡수하는 '붉각시나무'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삼나무'와 '편백나무'까지 말이다.
물영아리 오름과 사려니 숲을 거닐면서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를 보며 '우와! 어떻게 저렇게 하늘 위로 곧게 자랐을까? 정말 끝내준다. 삼나무가 역시 제주 숲의 끝판왕이야!'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던 게 생각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 이 삼나무 부산 쇠미산 오를 때 편백나무 숲길에서 봤던 편백나무랑 아주 비슷한데! 둘이 친군가!'하고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혹시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차이를 아세요?
그런데 이 해설가님이 두 나무의 차이를 시원하게 한 방에 해결해주시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신속하고 확실했다. 잎 모양을 차례대로 보여주는데 의심의 소지가 전혀 없었다. 삼나무는 잎이 뾰족뾰족하고, 편백나무는 잎이 편평 납작하다. 끝이다. 직접 내가 보고 만져봤다. 이제 삼나무, 편백나무는 쉽게 구별한다. 하하하하. 이거 하나만으로 엄청난 소득이다.
왼쪽 -편백나무, 오른쪽-삼나무, 얼핏 보면 구별이 안 간다.by 도도쌤
그러나 잎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왼쪽 :평편하고 납작한 잎을 가진 편백나무, 오른쪽: 잎이 뾰족뾰족 가시 잎을 가진 삼나무 by도도쌤
그러면 삼나무 숲에 삼나무가 왜 이렇게 곧게 자랐는지 알아요? 아래에 있는 가지는 누가 잘랐을까요?
밑 가지 앖이 곧게 자란 삼나무 by도도쌤
'뭐 곧게 자란 이유가 있었던 말이야? 아래에는 왜 가지가 없을까? 누가 잘랐나? 누구지?' 하며 귀를 쫑긋 세우며 듣는데 "나무 스스로가 잘란 거예요."라고 한다. 그 순간 소름이 돋는데 가만히 서 있기만 한 나무가 생각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과 집중을 한 거라고 한다.
커 가면서 주위 나무 때문에 밑 가지가 햇볕을 못 받을 바엔 밑가지엔 영양소를 안 주고 대신 햇볕이 많은 위 쪽으로 집중하자. 그렇게 해서 밑가지는 안 자라고 위로만 곧게 자라게 되었어요. 나무 스스로 가지를 잘라버리는 것을 '자절 작용'이라고 해요.
할 말이 없었다. 살기 위해 삼나무도 스스로 몸을 자르고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올라간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순간 이 거대한 삼나무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빨리 자라지 않는 습성을 가진 나무도 빨리 자라는 나무 옆에 있으면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으로 빨리 자랍니다. 보기엔 이 숲이 참 고요하게 있지만 치열하게 경쟁합니다."라는 숲해설가의 말에 소름이 한 번 더 돋았다.
숲해설가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by도도쌤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열하게 경쟁하며 절박하게 살아가는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있는 나. 나는 과연 무슨 절박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 나무를 보며 나무에게 배우는 알찬 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온다면 사람이 많이 찾는 '사려니숲길' 보단 '치유의 숲' 여기로 데려올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숲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이고, 중간중간 편백나무로 된 비치용 의자들이 두 '쉼팡'에 여러 있어 편안하게 누워 책 보거나 '산림욕' 하기엔 딱인 것 같다.
3시간 숲해설가님과 함께 나무도 배우고 맑은 공기도 마신 알찬 시간이었다. 5점 만점에 4.9점 강력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