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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Apr 15. 2022

겨울 든  날, 걸으며 주우며 '고근산 여기 힘드네!'

제주살이 1년(맛집 포함)

밤사이 비가 내렸더니 춥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차다. 겨울이 다시 왔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올레길 7-1코스를 가는 게 맞을까?


오늘의 일정 [올레 7-1코스]

655번 서귀북초[동]승차(9:50) - 월산동[북]하차 (10:15) -엉또폭포 구경(10:40)- 고근산 산행 (12:55)- 클린센터 (13:05) -솔왓동산 점심(13:10)


스틱에 우비에 등산화까지 챙겨 밖에 나오니 빗방울이 날리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오늘 이건 쫌 아닌 것 같은데."라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나도 이 날씨에 산에 가는 게 뭔가 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왕 나온 이상 새로운 곳을 개척한다는 탐험정신으로 마이너스 상황을 플러스 상황으로 긍정적으로 바꾸어 본다.


역시나 마음이 중요다. 날씨도 나의 긍정 마음에 신호를 준다. 20여분 버스를 타고 내리니 비가 뚝 멈추고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엉또폭포 가는 길 한라산이 저 멀리 보이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잘 보이는 건 처음이다. 비바람이 산행은 방해했지만 멋진 한라산을 보여주는데 한몫을 제로 한다. 시작은 두려웠지만 막상 올레길에 오르니 힘이 난다. '오길 참 잘했다!'



'엉또폭포' 가는 길. 차들이 쌩쌩 거리며 우리를 앞질러 간다. 차로도 갈 수 있는 모양이다. 다들 나처럼 비가 와서 폭포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로 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폭포 입구 데크길 앞에 섰는데 폭포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고 고요하다. 저 멀리 폭포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않는다. 폭포 보고 오는 사람들 표정도 뭔가 시무룩하다.


예상이 적중했다. 한 방울도 안 떨어진다. 하하하하.

'이 정도 비로는 택도 없네.'

엉또폭포는 못 봐서 아쉽지만 여기 오는 길을 정확히 익혔으니 그것만이라도 만족한다.

'비 엄청 오는 날, 널 꼭 보러 다시 올 거야!'



다음 목적지는 고근산이다. 엉또폭포 구경하러 온 사람은 많은데 고근산 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아내와 나 둘 뿐이다. 둘이서만 자연 속을 걸으니 폭포 못 본 기분이 싹 가신다. "아무도 없으니까 너무 좋네!"며 아내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난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입을 크게 벌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신다. 코로도 마음껏 이 신선한 숲 향기 가득한 바람을 빨아 당긴다.


여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맑은 숲 공기 너무 좋다. 바람을 폐 안쪽 폐포 하나하나까지 다 닿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곳까지 한 번 보내 봐! 폐가 좋아할 거야!


책 어디서 읽어 본 내용이라 따라 했는데 폐가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너무 신선함 그 자체다.



"우리 어제 올레센터에서 받아온 쓰레기봉투에 쓰레기 줍는 거 할까?" 아내의 말에 순간 마음이 갈팡질팡했지만 "한 번 해 보자!"라고 마음을 맞췄다.


고기 굽는 집게를 꺼내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니 멋진 풍경은 안 들어오고 쓰레기와 담배꽁초만 눈에 들어온다. 하하하하. 희한하다. 게다가 세상에 담배꽁초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 조그만 봉지에 채워도 채워도 차지가 않는다. 게다가 거워진 일반쓰레기 봉지가 고근산 올라가는 계단  힘들게 한다.



'왜 하필 오늘 이 험한 산을 올라갈 때 쓰레기를 줍길 시작했을까? 다음엔 무조건 길 좋을 때 하자. 그리고 담배꽁초 줍는 거만 해야겠다. 일반쓰레기는 너무 무거워서 너무 힘들다!'


혼자서 한없이 불평을 하고 있는데 계단 사이에 초록초록 자란 작은 풀들이 내게 말을 건다. "우린 이 높은 산에서도 추위와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 " 


'그래 그래 이 초록 풀들도 불평 안 하고 살아가는데 나도 할 수 있다. 좋은 일 하고 있다. 산을 깨끗하게 하고 있다. 이 높은 계단 올라갈 수 있다. 힘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며 한발 한발 걷는다.


힘겹게 올라간 고근산 정상에서의 서귀포 풍경이 예술이다. '헉!' 아무 말도 없이 한 동안 그 경치만 쳐다봤다. 힘겹게 올라왔던 불평이 한순간에 쏙 들어갔다. 그런데 고근산 정상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이 바람이 내 몸이 진짜 날아갈 것 같처럼 세게 분다. 주운 쓰레기 봉지랑 사진을 겨우 찍고 스틱을 꺼내 힘겹게 내리막을 걸어내려간다. 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클린센터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아내가 찾은 '솔왓 동산 식당'. 얼마나 고근산을 힘겹게 걸었는지 반찬 하나하나가 다 꿀맛이다. 고등어구이에 돼지 두루치기 그리고 오이무침까지  하나같이 다 깔끔하다. 아내랑 나 배가 너무 고파 반찬 하나도 안 남기고 싹 비웠다. 5점 만점에 4.5점이다.


"우리 다음에 나꽁초만 하자!"내가 말했더니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나 꽁초 아니고 나꽁치(나부터 꽁초 치우자)라니까. 몇 번이나 말해야 돼! 하하하"

난 왜 나꽁초가 편하지. 밥 먹고 나니 농담할 기분도 생긴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추워 아내가 "춥다"라고 했는데 현지 할머니께서 "겨울 들었다."라고 려준다. 하나 배웠다. 오늘 날씨 진짜 겨울 든 날씨 맞다. 정말 춥다.


춥고 힘든 산행이었지만 '고근산' 볼 때마다 함께할 담배꽁초 추억이 생겼다. 고근산 오르면서 생각 고근산 삼행시로 마무리한다.


고. 고생하며

근. 근근이 올라간

산. 잊지 못할 거야!



도전하고 도와주는 쌤, 도도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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