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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un 16. 2022

올레길 21코스에서 만난 제주 최고의 풍경, 지미봉

점심 맛집 포함(탐나는 문어 하도점)

직업이 교사라 수업을 참 많이 다.  수업의 시작인 동기유발이 좋으면 그 수업은 성공한다. 긴 40분의 첫 시작부터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그 이후도 좋은 기분으로 지속할 수 있다. 여행도 수업처럼 시작이 중요할까?


 "여기, 빵 너무 맛있는데. 커피도 맛있고! 시작부터 너무 기분이 좋다." 아내 먹고 싶었던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먹더니  웃으며 말한다. 한입 베어 먹었는데 구수한 팥 향이 입안에 쫙 퍼진다. 여행도 수업처럼 시작이 중요한 것 맞다. 맛있는 도넛에 힘을 내어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우영베이커리 by도도쌤




올레길 21코스 by도도쌤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시작하는 올레길 21코스. 세화 해변이랑 상당히 가깝다. 세화까지 왔는데 해수욕장을 안 보고 가긴 아쉽다. 5분도 채 안 돼서 나타난 세화 해변, 아담하니 참 귀엽다. 중간중간 바위가 있어 좀 불편해 보이지만 아이들이랑 놀기엔 딱이다. 벌써 아이들 데려와서 물놀이하는 상상을 마음껏 해 본다.


세화해수욕장 by도도쌤

"오랜만에 걷는 올길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좋지?"


시작부터 맛있게 사 먹은 빵과 커피가 컸다. 거기에 예쁜 해변까지 봤더니 아내 연신 감탄을 한다. 룰루랄라 거리며 발에 모터를 단 것처럼 속도가 어마 무시하다. 해변도 아니고 자주 거닐던 돌밭 풍경인데도 아내 그렇게 좋아라 한다.


올레길 풍경 by도도쌤

걷다가 보니 '별방진'이 있는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주위 숙소들이 참 아담하다. 여기서 하룻밤 자는 즐거운 상상까지 해 본다. 중간 지점인 '석다원'에서 스탬프를 찍고 어느새 오늘의 점심 먹을 장소인 '탐나는 문어 하도 점'에 도착을 했다.

http://naver.me/xuIlmUuw



솔직히 배가 많이 안 고파 여기 지나칠까 살짝 고민을 했었다. 아내가 배 고프기 전에 먹자고 해서 들어온 거였는데 안 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탐나는 문어 하도점 by도도쌤

우선 앉은자리 바다 뷰가 끝내준다. 뷰 좋은 고급 카페 저리 가라다. 사각 통유리 속에 토끼섬을 품은 바다가 그림이다. 거기에 수국 꽃까지 더해지니 밥을 먹으러 왔는지 풍경 구경 왔는지 모를 정도다. 게다가 여기 시원한 보리차 물이 참 마음에 든다. 보통 가게에주는 정수기 물보다 확실히 맛있다. 정성이 들어간 보리차 향에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힘든 갈증이 쏵 씻겨 내려간다.


사실, 아내랑 점심에 문어가 들어간 부대찌개를 먹자고 출발 전에 이야기가 됐었다. 가격45,000원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주문을 하려니 비싼 가격에 이 덜덜덜 떨렸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께서 두 손으로 조심히 부대찌개를 들고 오셨다. 냄비 사이즈에 먼저 놀라고, 부대찌개 중간에 당당히 앉아 있는 통문어 한 마리에 또 놀랐다. 국물 맛은 어떨까 하고 먹어 봤는데 전통적인 부대찌개의 구수한 맛이다.

통문어 부대찌개 by도도쌤

문어도 가위로 먹기 좋게 작게 잘랐다. 문어 맛도 확인해야 한다. 쫄깃쫄깃하다. (돌문어라 그런지 질긴 부분도 있다.) 팔팔 끓인 국물과 함께 햄과 각종 야채를 한 국자 퍼서 밥과 먹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 먹을수록 더 찐해지고 구수 해지는 국물 덕에 건더기와 함께 밥을 어느새 싹 다 비워버렸다. 멋진 풍경에 입과 배까지 호강했더니 저 멀리 토끼섬까지 수영해서 갈 정도로 에너지가 가득 찼다.

토끼섬 by도도쌤

 먹고 나니 여기 바닷길이 더 아름답다. 가다가 이름 모를 해변 풍경에연신 감탄을 한다. 영상 속 '지미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저 높은 지미봉을 오를 줄이야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하도해수욕장 근처 by도도쌤

"저 멀리 보이는 저 높은 산 우리가 가는 거야?"

 맞다. '지미봉'이라고 적힌 저 산이 마지막 목적지다. 고생하며 근근이 걸었던 '고근산' 모양이랑 비슷하다. 왠지 힘들 것 같다. 끝없는 계단이 하늘로 이어졌던 '녹고메 오름'도 생각이 났다. 힘들 것 같다.

"뭐 가다가 너무 힘들면 둘레길도 있다고 하니 일단 가 보자!" 그렇게 아내랑 결론을 내리고 지미봉으로 뚜벅뚜벅 걸어다. 지미봉 가는 한적한 시골길, 우리 말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미봉과 지미봉 입구 by도도쌤

지미봉 입구에 들어섰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보다 평지 둘레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평지 길로 가자!'라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아내가 이미 산을 오르고 있다. 그래 가 보자! 죽기야 하겠나. 20분만 오르면 오를 수 있다고 하니 어금니 꽉 물고 올라보자. 주운 나무 지팡이에 혼을 실어 계단이 하나도 없는 오르막을  헉헉헉 소리를 내며 오르고 또 오른다.

지미봉 풍경 by도도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의 구절이 갑자기 오른다. 그래 오르고 오르면 지미봉도 오를리 없다.


그렇게 헉헉 거리며 오른 정상이 대박 중에 초대박이다. 좋을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좋을지는 상상을 못 했다. 입이 벌어져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우도와 성산에 넋을 잃었다. 

지미봉 정상 by도도쌤

'군산 오름'에서 봤던 산방산과 송악산 풍경과 거의 맞짱을 뜬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은 지금껏 올랐던 어느 오름의 풍경을 다 넘어선다. 이름도 낯설었던 '지미봉'에서의 뜻밖의 초울트라 슈퍼 풍경에 취해 아내가 "내려 가자!"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역시나 멋진 풍경 값은 또 해야 한다. 내려가는 계단이 상상초월이다. "제주에서 최고의 멋진 경관을 봤으니까 내리막의 수고쯤이야 해줘야 안 되겠나? 힘들긴 진짜 힘드네!"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내가  산신령 막대기가 없었다면 내 무릎이 너덜너덜해졌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올라오는 사람들 입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헉헉헉 생생하게 들린다. 고로 많은 사람들이 반대편에 차를 주차하고 여기 지미봉(지미 오름)에 올라온다.

지미봉 내려가는 길 by도도쌤

지미봉에 힘겹게 오르내리면서 봤던 '시원한 음료가 생각나세요?' 카피 문구. 진짜 시원한 음료가 계속 생각나 속는 셈 치고 무인카페 '아꼬아'로 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 아늑하고 좋다. 얼마나 힘들게 내려왔는지 시원한 포카리가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아내의 시원한 달달이 커피도 쭉쭉 넘어간다. 충전도 잠시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시원한 물도 하나 고 잠깐 동안 잘 쉬었다. 주인은 없었지만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 무인카페였다. 그 마음을 포스트잇에 남기고 돌아섰다.

무인카페 아꼬아 by도도쌤


올레길 21코스, 오전 10시부터 걸어서 오후 3시에 종달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으니 거의 5시간을 걸었다. 올레길 21코스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을 때 너무 감격스러워 두 주먹 불끈 주고 하늘 위로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올레길 21코스 완주 by도도쌤

세화의 아담한 돌담길도 생각나고, 맛있게 먹은 문어 부대찌개도 생각나고, 무엇보다 지미봉(=지미 오름)에서의 성산과 우도를 품은 바다 절경이 생각난다. 올레길 21코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안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여행도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은 걸 깨우친 시간이었다.


제주에 왔다면 관광명소보다 올레길 21코스를 두 발로 걸어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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