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에게 주는 선물 #6 추위와 어묵 하나

by 도도쌤

춥다. 추워. 어제는 -8도였다. 부산이 이렇게 추울 수 있다니 놀라웠다. 마트에 갈 일이 있어 아들 보고 가자고 하니, 아들도 추운지 차를 타고 가자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떻게 그렇게 신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열 살 아들 머리는 따라갈 수가 없다.


차에서 내리니 처음에는 시원하더니, 이런, 곧 한기가 얼굴을 강타했다. 얼른 마트 안으로 달려가 추위를 녹였다. 그렇게 동장군의 매서움에 떨고는 집에 와서 밖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 와야 했다. 요즘 아침마다 내 몸을 생각해 챙겨 먹는 양배추, 사과, 당근 중에서 사과가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친구 말로는 1년 동안 자기가 매일 아침에 양배추, 사과, 파프리카를 먹었는데 피가 아주 깨끗해졌다고 들어서다. 나도 피를 깨끗하게 하고 싶다!


옷을 단디 껴입고 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왔는데 생각보다는 덜 추웠다. 내복에 모자에 목도리 장갑까지 중무장을 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오전보다는 확실히 추위가 가셨다. 속으로 땡큐 하며 장 보러 룰루라라 간다. 그래도 바람 불 때는 춥구나 추워!


아이들이 먹고 싶은 빵과 우유를 사고, 내가 먹고 싶은 사과와 귤을 잔뜩 샀다. 오! 그런데 과일 과게 옆에 오늘따라 유난히 떡볶이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떡볶이 옆에 있는 어묵을 보니 연기가 살짝 피어오르는 것이 어서 와서 내 한입 하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래, 오늘 추운데 이렇게 시장까지 나와서 아이들을 위해 장도 봤는데 나를 위해서 선물 하나 줘야 안 되겠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선물은 바로 너 어묵으로 정했다.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하나에 800원이다. 가격도 참 많이 올랐다. 잔돈 200원은 어떻게 할까 그 생각이 먼저 든다. 오늘의 선물은 어묵이기는 하나 진짜 선물은 어묵 국물이다. 이 추운 날, 어묵 국물 한 입은 언 몸을 순간적으로 따뜻하게 해 주는 보약 그 이상이다.


국자로 김이 나는 따뜻한 국물을 종이컵에 한 번 담는다. 삼분의 일가량이 찬다. 이 정도는 부족하다. 한 국자 더 한다. 반 이상이 찬다. 어묵 하나 달랑 먹는데 어묵 국물을 많이 먹으니 슬쩍 눈치가 보인다. 주인 할머니를 슬쩍 쳐다본다. 안 본다. 다행이다. 빛과 같은 속도로 한 국자 더 퍼서 종이컵에 가득 국물을 채운다.


무거운 과일은 내려놓은 채, 추운 날, 떡볶이 가게 앞에서 혼자서 따뜻한 어묵 국물을 한 입 마시니 추억에 젖는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먹던 때가, 임용고시 준비하다 어느 추운 날 혼자서 먹던 때가, 장모님이 보온병에 어묵 국물을 가득 담아 오셔서 김밥과 함께 추운 겨울날 놀이터에서 먹던 때가.


몸 안으로 어묵 국물이 들어가니 추위가 싹 가시고 목에서부터 가슴 그리고 몸 구석구석까지 따뜻해진다. 생각보다 담백한 어묵향이 입 안에 가득 퍼지니 어묵보다 국물이 더 좋다. 어묵도 한 입 베어 먹는다. 맛있다. 먹는 시간은 몇 분도 채 안 되었지만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추운 바람이 불어와도 손에 든 사과와 귤 봉지가 무거워도 속은 뜨뜻하고 마음은 상쾌하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어묵 하나 어묵 국물하나가 이렇게 내게 큰 위로가 되고 큰 선물이 될 줄이야! 인생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재미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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