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바닥에 있었고, 음악은 조용히 흘렀다. 듣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밤.”
무대는 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바닥에 앉아 귀를 기울였고,
그것만으로도 음악은 삶을 바꾸고 있었다.
바닥에서 시작된 음악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강습이 끝난 저녁, 나는 트리베니 음악학교의 작은 공연장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40루피. 싸고도 값진 밤이었다.
공연장은 늘 붐볐고,
관객들은 바닥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기다렸다.
연주자도, 청중도, 무대도, 객석도
모두 바닥에서부터 시작됐다.
무대는 작았지만, 음악은 컸다.
시타르의 알랍이 먼저 흐르고,
이내 타블라가 리듬을 보탰다.
그날따라 플루트가 등장하거나,
사랑기나 산뚜르가 공간을 채우기도 했다.
난두, 무대 위의 또 다른 얼굴
무대 앞자리는 늘 타블라나 시타르를 배우는 수강생들이 자리했다.
나는 언제나 타블라 앞에 앉아
선생 난두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연주를 기다렸다.
난두는 무대 위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북을 치면서도
제자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 눈빛 하나가 수업보다 더 많은 걸 알려줬다.
연주와 짜이, 그리고 말 없는 감상
공연 중간엔 짜이가 돌았다.
달콤하고 뜨거운 인도식 밀크티 한 잔.
그 짧은 휴식조차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감상을 말로 풀지 않아도, 음악은 이미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늘 무대 아래에 있었다.
그저 바닥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도 그 음악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요구한다는 걸.
연주자만이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도,
그 소리의 흐름 안에 함께 있는 것이었다.
이방인의 귀, 바라나시의 리듬
트리베니 강습소엔
오랫동안 머물며 악기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특히 일본인 수강생들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하루 종일 묵묵히 타블라를 두드렸다.
말을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그들의 태도는 묵직한 자극이었다.
나는 한 달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그들의 진지함은 내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부여해주었다.
음악이 만든 우정, 이방인들의 밤
쿠미코하우스에선 또 다른 음악 애호가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 일본의 여성 기타리스트,
스승과 함께 인도에 정착한 플루트 연주자까지.
밤이면 옥상에 모여 각자의 악기를 연주했고,
마살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국적이나 언어보다 중요한 건,
그저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때론 콘서트가 끝난 뒤 카페에 들러
방금 들은 리듬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말 한마디 없이,
한 곡의 연주가 우리의 우정을 대신했다.
바라나시, 음악이 사람을 이어준 도시
인도음악은 나를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이국적인 외로움 속에서도,
같은 소리를 따라가는 이들과의 우정이
내 시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보진 못했지만,
그 시절의 음악과 온기는
지금도 우리 사이를 조용히 이어주고 있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준다.”
“음악은 언어를 넘는다. 마음이 닿는 방식은 언제나 비슷하다.”
다음 편 예고
8편.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나다웠던 시간
— 음악이 흐르지 않는 순간에도, 여전히 음악 안에 머물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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