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도 철학의 가치가 유용할까?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조상 가계도를 통해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우리의 유래를 추적한다는 건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채우는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질문이 된다.
사람의 이러한 복잡한 생각 과정을 한마디로 '철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연재 역시도 본질적으로 철학을 지향한다.
철학은 영어로 philosophy. 사랑한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philo와 + 지혜를 뜻하는 sophia가 합쳐졌으며, 지혜를 사랑한다, 지혜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한자로도 '哲學'은 지혜를 통찰하는 학문, 즉 철학은 근본적으로 지혜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철학이라고 한다면 일단 어려운 사람 이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공자, 칸트, 사르트르…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통상적으로 ‘그들이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암기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철학의 최선이란 말인가?
전국의 많은 대학에는 철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요즘은 AI 철학, 과학철학 같은 수업도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강의는 서양과 동양의 오래전 철학자들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책을 썼는지, 그들의 생애와 사회적 배경은 어땠는지를 정리하고 익히는 데 집중되어 있다.
물론 그 말들에는 지금 읽어도 놀라운 통찰이 담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말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건 아니다. 지금의 상식과는 많이 어긋나는 주장들은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철학자 한 명이 독재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라고 했고,
헤겔은 “세계정신은 유럽에서 실현되며, 아프리카는 인류 역사와 무관하다”라고 했으며,
공자는 “여자와 어린이는 가까이하면 버릇없어진다”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눈에는 맞지 않는 말로 보인다.
물론 옛날이야기를 듣는 건 재미있을 수 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래동화가 그랬고, 고대 신화 속 영웅들의 모험담을 읽는 것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가?
하지만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그런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삶에 직접적인 답을 주기는 어렵다. 과거엔 삶의 지혜였던 말들이, 지금은 오히려 현대의 윤리, 법, 상식과 자주 충돌하기도 한다.
현대의 이야기는 옛날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사물을 설명할 수 있다. 나무는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진 유기 탄소 화합물이며, 의자는 중력을 고려해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갖춘 도구다. 사람은 장시간 서 있을 때보다 앉을 때 덜 피로하며, 이것이 의자의 존재 이유다.
이 설명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굳이 등장할 필요는 없다. 그의 ‘질료’나 ‘형상’ 같은 개념을 꺼내지 않아도, 생각을 통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철학은 단지 ‘누구의 말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본질'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그에 대한 답을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드러난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무가 탄소 분자 화합물인 것을 몰랐지만, 지금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뇌과학은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고, 인공지능은 사고를 모방하며, 진화심리학은 윤리의 기원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철학이 반드시 누군가의 오래된 인용 위에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철학은 우리의 삶에서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인간은 의미에 대해 항상 물어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묻는 방식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철학이다. 지금 이곳의 언어로 말하고, 지금 이곳의 문제를 사유하는 철학이다. 철학 중 하나가 ‘왜 사는가’를 묻는 일이라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반드시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와야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데카르트를 몰라도 철학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간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해 보기 위해서는 과거 철학의 먼지 쌓인 옛 말을 벗겨내고, 지금 우리 삶의 말로 다시 숨을 불어넣어 볼 필요가 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철학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이 여행이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그리고 그 여정의 입구엔, 피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신에 대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