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신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성당에 나가 미사를 참례할 때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성모 마리아상, 고풍스러운 실내장식, 신부님의 말씀...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며, 영성체를 모시고 주변 사람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다 보면, 일주일 동안 일터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고군분투했던 영혼이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든다.
요한보스코.
19세기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성인이시자, 이런저런 핑계로 성당을 자주 못 나가고 있는 공상과학철학자의 세례명이다.
이렇게 종교에 마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에서 여러 면으로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초월적인 존재를 믿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이자,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대통령과 환담한 이스라엘 국적의 세계적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도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이 초월적인 존재, 신화 등을 믿는 것은 어느 순간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과학을 어렴풋이나마 접하고, 첨단 문명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때때로 불경스러운 생각들을 하기도 한다.
-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셋째 날 식물을 만드시고 넷째 날 해, 달, 별을 만드셨는데, 광합성이 필요한 식물을 생각해 보면 날짜를 뒤바꿔 기록한 것은 아닐까?'
-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것은, 원래 화이트와인이었는데 사람들이 물로 오해했던 것이 아닐까?'
- '예수께서 죽은 이를 살리신 것은 그 사람이 단지 잠깐 기절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불경스러운 생각일 수 있지만, 이는 신에서 좀 더 자유롭게 사람의 이성을 바라보려는 자연스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류 예술, 문학, 철학, 정치, 과학의 역사는 중세 인류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옮겨 오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다행히도 현재의 로마 가톨릭은 성경의 해석을 문자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닌, 상징과 비유로서 해석하는 입장으로 유연하다. 즉 성경에 적힌 문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록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내용에 사실이 아닌 비유나 상징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는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증명을 수용해 왔다.
교황청이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1616년 금서로 지정한 이후, 1835년 금서에서 해제하기까지 219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현대에 와서 지동설을 부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주의 빅뱅은 교회가 좀 더 쉽게 받아들였다. 1927년 물리학자 '르메트르'가 빅뱅 이론을 제안했는데, 아인슈타인 등 과학계는 반발한 반면, 로마 가톨릭은 이를 오히려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창세기 1장 3절. [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
우주의 빅뱅은 이 장면과 묘하게 닮아있다(참고로 르메트르는 과학자이면서 벨기에 교회의 신부).
반면, 생명의 진화론은 수용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1996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그리고 2023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진화론을 신앙의 범위 안으로 품었지만,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신앙인들이 많다.
이는 꼭 신자가 아니라 무교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진화론이라는 것을 배운 기억은 나지만, 실제로는 논리적 또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천주교의 관점에서 이야기했지만, 다른 신앙들 또한 과학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입장을 보인다. 불교는 대체로 지동설, 빅뱅, 진화론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며, 개신교는 지동설은 인정하는 반면, 대체로 빅뱅, 그리고 특히 진화론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큰 편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떨까?
종교가 과학에 대해서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동안, 과학도 종교를 수용할 수 있어야 균형적이지 않을까?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는 한 번씩 언급을 했으니, 과학으로 이슬람의 세계를 이해하는 시도를 한 번 해보도록 하자.
이슬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바르자흐'(Barzakh)라는 중간세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머물던 영혼은, 알라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다시 육체와 함께 부활한다고 믿어진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천사들에 의해 기록되며, 믿음과 선행을 실천한 사람들은 행복한 잔나(Jannah)로 가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자한남(Jahannam)으로 가게 된다고 믿는 것이 이슬람 신자들의 세계관이다.
인간 행동에 대한 천사들의 기록은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을까?
양자역학에서는,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USB에 담긴 소설책 원고를 출력해서 불에 태운다고 해도, 글자의 정보는 태운 재, 연기, 열에 분산되어 남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걀'이라고 인쇄된 종이를 태우고 난 후와 '계란'이라고 인쇄된 종이를 태우고 난 후의 흔적 정보는 달라지게 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양자 수준에서는 그 정보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환되고 흩어져 남아있다고 본다.
부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은, 만약 뇌의 모든 시냅스 연결 정보를 완벽하게 저장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면, 죽은 사람의 의식을 재현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또, 바르자흐라는 중간 세계가 혹시 다중우주론에서의 다른 우주는 아닐까?
어쩌면 최후의 심판 날이란, 모든 뇌의 정보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날, 착한 뇌에는 세로토닌, 옥시토신, 도파민을 주입하는 가상현실을, 악한 뇌에는 통증을 자극하는 가상현실을 영화 '매트릭스'처럼 구현해 주는 그날일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자들이 실제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상과학철학자의 가설은 자유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은 서로를 증명하거나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반자일 수 있다.
각자의 신앙은 존중받아야 한다.
신앙의 예는 아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LG 트윈스의 팬이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 LG의 야구는 이래 저래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LG 말고 다른 팀을 응원하라고 하거나 축구팀을 응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그리고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한들 한번 응원하기로 한 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이 브런치의 방향은 과거의 철학과 종교적 가르침을 잠시 접어두고, 인간 중심으로 인간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의도임은 여전히 맞다.
그러나 놀랍게도, 과학자들조차 경이롭게 생각하는 놀라운 현상들은 우리의 세계에 실제로 존재한다. 이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다음 편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