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와 족보를 통해 보는 과거 유전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인간을 탐구해 보려 하니, 먼저 그 근원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씨와 가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따지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족보를 따지고 무슨 공파의 몇 대손이니, 저 사람은 성씨가 귀하니 미천하니, 이런 류의 인식들이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많았다고 한다(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대한제국 선포 3년 전).
그러한 인식들은 전쟁의 혼란한 상황을 겪어 가며 차츰 붕괴되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족보와 가문보다 중요하게 따지는 것이 재력과 권력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씨와 관련해서 조상을 궁금해하거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은연중 영향을 받거나,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조선 이 씨 왕조의 후손과 관련된 기사에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곤 한다.
실제로 이응렬이라는 독립운동가가 계신데, 해방 후 남조선노동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될 뻔한 위기에 몰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그러나 '이응렬이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이니 살려두어야 한다'라고 하여 처형을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응렬은 실제로 충무공 이순신의 14대손이다.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 50%씩의 유전자를 물려받게 된다. 아버지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로부터 각 50%,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각각 50%를 물려받았다. 바꿔 말하면 나는 친할아버지 유전자의 25%, 친할머니의 25%, 외할아버지의 25%, 외할머니의 25%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그렇다면 증조할아버지 유전자의 몇%를 내가 가지고 있을까? 정답. 12.5%.
더 가보자. 충무공의 14대손 이응렬은 충무공 유전자의 몇%를 물려받았을까? 빠르게 계산이 안 될 것 같아서 답을 대신 말해본다. 약 0.0061%이다.
이응렬 씨는 충무공 때부터만 따져본다고 해도 2의 14승 즉, 16,384명의 유전자를 골고루 물려받았는데(충무공의 부친 세대까지 따져본다면 32,768명의 유전자. 올라갈수록 끝이 없다.), 성씨는 딱 하나다. 덕수 이 씨 충무공파 14대손.
여기서 족보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첫째, 족보는 어머니, 즉 모계의 유전자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응렬 씨의 모친이 무슨 성씨인지는 모르겠지만, '덕수 이씨'에는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50% 유전자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법을 바꿔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해 모계의 유전자를 반영한다고 해도, 부계의 유전자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8대 조상까지만 올라가 봐도 성씨를 물려받은 그 조상 한 명으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0.4%에 불과하다(9 촌부터 결혼을 허용하는 이유도 아마 0.2% 정도의 유전자 공유는 유전학적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누군가 판단해서일지 모른다.).
즉, 내가 누구의 아들 딸이고, 누구의 손자 손녀인지 크게 잡아 100~200년 정도까지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현대의 전주 이 씨 어느 한 사람이 "시조가 이성계이므로 내 몸에 이성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거의 틀린 말이다(유전자적으로 0.0000001% 정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이응렬 씨는 충무공 시대 때부터만 따져도 16,384명의 유전자가 만들어낸 조합인데, 더욱 위로 무수히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30대 조상까지만 올라가도 약 10억 명의 조합, 40대 조상까지 올라간다면 약 1 조명의 조합이 된다. 그런데 과거에 인구가 그렇게 많았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아주 오래전 100대 200대... 그 끝에는 누가 있었을까? 인류 최초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그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