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돼서 부산에 이사 왔다. 가족, 친척, 친구도 없는 부산에 온 이유는 딱하나다.
바다가 있는 대도시.
이사 전 안정된 직장에 다녔다. 세후 300만 원을 받았고, 주 5일 일했다. 공휴일은 쉬었고 연차도 자유롭게 썼다. 와이프와 둘이 먹고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런 생활을 버리고 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면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다.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아파트를 구입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가전제품도 비싸고 좋은 걸로 장만했다.
원룸으로 시작한 신혼생활을 견뎌준 와이프를 위해서다. 신축 아파트지만 와이프의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를 새로 했다. 2천만 원을 들여 도배, 욕실, 페인트, 키친 등을 싹 바꿨다.
새 사업을 시작했다. 중장년에게 SNS를 가르치는 교육사업을 꿈꿨다. 초반에는 성과도 있었지만 계엄령 이후 가뜩이나 안 좋았던 경제가 더 얼어붙었다.
내 교육사업에 관심을 두는 이도 점점 줄어갔다. 한 달 두 달 수입 없는 달이 늘어가니 마음이 초조해진다.
사업에 성공해 부산에서 애 낳고 오손도손 살고 싶었는데...
돈을 벌어야 했다. 생활비, 관리비, 공과금을 충당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20대 이후로 알바를 해본 적이 없다. 마흔이 된 나를 누가 써줄까?
알바천국, 알바몬을 새로 고침하며 일거리를 찾았다. 편의점, 음식점, 카페는 나이 때문에 안된다. 건설현장 일은 자신이 없다. 뭔가 노가다 아저씨들과 어울리면 나쁜 길로 빠질 거란 편견이 있었다.
일용직 잡부로 전락했다. 주 7일, 빨간 날 가리지 않고 일 했다. 더럽고 먼지 많은 현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했다.
하루 종일 일해 번돈은 10만 원 남짓.
회사 다닐 때는 책상에 앉아 마우스 굴리며 하루 15만 원을 벌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부산으로 이사 온 걸 매일 후회한다.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더니 실상은 더 심했다.
그냥 회사에 다녔으면 먹고살 걱정은 안 했을 텐데.
얼마나 더 잘살려고 부산으로 와 이 고생을 할까.
바보 같은 선택을 한 내가 원망스럽다.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부산을 택하지 않을 테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부산 일용직 잡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