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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사기

by 일용직 큐레이터

이사 후 두 달간 수입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알바 공고를 이리저리 뒤졌다.


시스템 비계, 하루 14만 원


사실 비계가 뭔지도 몰랐다. 검색해 보니 건물 올릴 때 외관에 두르는 철골 구조물이다.

힘쓰는 건 자신 있다.



시스템 비계지원/OOO/40세/181cm/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증 유

한 줄 문자를 보내니 몇 시간 후 답변이 왔다.


12월 31일 OO역으로 9시까지 오세요.


OO역에 도착해 전화를 거니 근처 카페로 오란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몇 명이 나를 반긴다.

아메리카노 한잔 내어주며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몇 분 후 짧은 스포츠머리의 40대 남자가 들어선다. 팀장이란다.


지원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 내 나이를 듣곤 열심히 하라며 등을 토닥인다.


힘들지만 끈끈한 팀워크로 일한다. 열심히 하면 되니 걱정 마라.


이제 내일부터 시작이다. 하루 14만 원을 받으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주 6일 일하면 300만 원 남짓 벌 수 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안심됐다.


이른 새벽 지하철을 타고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현장 주변에서 팀원들을 만나 게이트로 들어섰다.

팀원은 어제 본 몇 명이 다가 아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최고령이 아니라 다행이다.


건설현장에 첫 출근하면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팀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교육장에 모였다.

중국인, 베트남인 그리고 흑인 친구도 있었다.


몸이 떨려온다. 좀 무섭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해본적이 없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파트장으로 일하며 팀원들을 이끌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다.


안전교육, 계약서 작성이 끝나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된다.

혈압 체크를 하는데 탈락자가 속출한다.

150 이하면 통과.

매일 술 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노가다꾼들에겐 힘든 시험이다.


따뜻한 물 마시기. 팔 주무르기.

혈압을 낮추는 방법도 다양한다.

난 다행히 통과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병원을 가야 한단다.

배치 전 검사라는 걸 받아야 했다.

팀원의 차를 얻어 타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걸걸한 욕설을 섞으며 대화를 한다.

X팔, O끼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노가다하는 분들에 대한 편견이, 편견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매년 받았던 정기검사와 같다.


교육장에서 봤던 외국인 분들도 와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만 보내면 어떡해요!

간호사분의 외침이 들렸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반공수라도 일하고 싶었는데 내일부터란다.

안전화, 장갑, 작업복 다 챙겼는데 다시 집에 돌아왔다.

그나마 집에서 몇 정거장 안되어 다행이다.


집에 와 씻고 부족한 잠을 청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그 어린 20대 사수다. 현장 사정으로 이번 주는 일이 없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란다.

속이 부글부글 했지만 알았다고 했다.


푹 쉬고 다음 주부터 시작하면 된다.

검색해 보니 시스템 비계는 힘쓰는 일도 많고 위험하단다.

특히 낙하 사고가 많았다.

돈을 많이 주는 이유가 있었다.


일요일 저녁즈음 사수 친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OO역 현장이 당분간 못 들어간단다.

그래서 기장군 현장을 먼저 가기로 했다.


거리가 좀 먼데 올 수 있냐 묻는다.

자차로 간다고 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면접 본다고 하루.

교육받고 검사받는데 하루.

OO역 현장 기다리는데 1주일.


이렇게 열흘 가량을 날렸다.

기장군 건설현장은 수요일에 가기로 했다.


역시나 화요일 저녁 전화가 왔다.

신입은 당분간 투입하지 않으니 대기하란다.


폭발할 뻔했다.

X팔, O끼를 섞어가며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대기하는 동안 카톡방을 개설해 잘해보자느니, 좋은 팀이라느니 메시지를 보내더니...


물론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한건 아니겠지.

현장 사정으로 일정 변화가 있는 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꼭 하루전날 통보한다.


그리고 기약 없이 대기하란다.

안 한다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겠단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인원이 필요 없어진 게 분명했다.

그럼 진작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부산 첫 일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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