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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직원에게 욕먹는 40대 알바

by 일용직 큐레이터

상하차 알바를 끝낸 후 물류센터 일을 시작했다.

편의점 물류센터 피킹 알바인데 하루 일당은 9만 원이다.

식사제공에 셔틀버스까지 있다.


피킹 알바는 간단하다.

물류센터에 보관된 물품을 수레에 담아 매장, 지역별로 구분해 파킹하면 된다.

물건을 픽(pick)해서 파킹(parking)하는 일이다.



OO역 1번 출구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미니버스 안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도착한 물류센터는 낡아 보였다.


대기실 화이트보드에는 '데이싸인' 어플을 다운받아 가입해 두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은 종이 계약서 보다 어플을 많이 사용한다.


물류센터는 크게 상온, 저온으로 나뉜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일용직 숫자를 세고

각 구역 담당이 필요한 숫자만큼 데려간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데이싸인 어플에서 막힌다.

본인 인증이 안되거나,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급기야는 본인 핸드폰이 아니어서 집에 돌아가는 이도 있었다.



남들 다하는데 혼자 뭐 하시는 거예요?!!!


일 시작한 지 30분 만에 고함 소리가 들렸다.

20대 직원이 50대 아주머니에게 일 못한다고 타박 한다.

실수를 하거나 일을 잘 못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나무랄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이 너무 안 좋았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면전에서 아주머니에게 소리친다.

조용히 불러내어 따져도 될 일인데...

아주머니는 결국 30분 만에 집에 돌아갔다.



피킹은 간단하다.

쇠창살에 바퀴가 달린 수레를 끌고 주문 리스트에 담긴 물건을 담으면 된다.

구역은 ABCD로 나뉘고 물건은 1~55... 순서로 보관되어 있다.


무거운 소주 박스부터 가벼운 라면 상자까지 물품은 다양하다.

요즘 제로가 유행이라, 제로와 비제로 상품을 잘 구별해야 한다.

피킹 후 지정된 장소에 수레를 파킹하면 배송기사가 차에 싣고 간다.


이 파킹이 가장 어렵다.

수레를 파킹하는 위치가 너무 애매하다.

1~10번 이런 순서가 아니라 178번, 235번, 311번 이렇게 나뉘어 있다.

심지어 바닥 숫자 표시가 다 지워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파킹해 놓은걸 보고 요령껏 가져다 놓았다.

잘 모르면 직원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한번, 두 번, 세 번 질문이 늘어나면 얼굴에 짜증기가 올라온다.




이걸 왜 여기다 놓은 거예요? 일만 잘하면 욕먹을 일 없으니 똑바로 하세요.


내가 파킹을 엉뚱한데 했나 보다.

역시나 모두가 들으라는 듯 또랑 또랑한 목소리로 면박을 준다.

어린 직원에게 죄송하다 말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거 이렇게, 저렇게 해서 저기에 두세요.



제 말 들은 거 맞아요? 제가 뭐라고 했는데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자 직원이 톡 쏘아붙인다.

잘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편의점 물류센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한다.

자세히 보니 서로 간의 상하관계가 보인다.


일단 정직원은 물류센터의 왕이다.

유니폼을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며

간혹 물량이 많을 때 현장에 투입된다.

정직원은 여간하면 만나보니 힘들다.


계약직은 유니폼 조끼를 걸치고 일한다.

일용직을 관리하고

지게차를 몰고

물품을 검수하는 역할을 한다.


고정직은 매일 출근하는 일용직이다.

사복을 입어 일용직과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고정직이 일용직을 가장 많이 괴롭힌다.


피킹을 시작할 때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바코드를 찍는다.

그럼 누가 어느 매장 물건을 담당했는지 알 수 있다.

또 하루에 몇 건이나 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고정직은 이 숫자에 자부심을 갖는다.

누가 몇 건을 했네

일용직은 저것밖에 못 했네 하며

수근 된다.



9시부터 18시까지 일하고 9만 원을 받았다.

쉬는 시간은 오전과 오후에 각 한 번인데 바쁘면 그냥 지나간다.


제공되는 점심은 그저 그랬다.

오후에는 간식을 주는데 빵, 라면, 우유, 아이스크림 등이다.


오후즈음 연장 근무자를 파악한다.

물량에 따라 시간은 달라지는데

주로 계약직, 고정직이 연장 근무를 하고

필요하면 일용직에게 제안한다.


나는 첫날부터 연장근무를 했다.


일 자체는 할만했다.

혼자서 뻘뻘 거리며 뛰어다니는 게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허리도 펴고

다리도 풀며 일했다.


며칠 하니 위치가 눈에 익어 피킹, 파킹도 잘 해냈다.


하루는 계약직이 날 따로 불러 음료파트로 데려갔다.

일 잘해서 다른 업무도 시켜보는 거란다.



컨베이어 벨트 좌우로 음료가 종류별로 가득 쌓여있다.

음료 앞에는 손으로 당길 수 있는 줄이 있다.

담아야 할 음료의 조명이 반짝거리면

줄을 당기면 조명이 꺼진다.

줄을 당기고 필요한 숫자만큼 음료를 가져오면 된다.


순발력, 민첩성, 체력, 눈치가 필요한 작업이다.

언제 어느 음료의 불이 들어올지 모른다.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들어오면 효율적으로 순서를 맞춰 픽해야 한다.


2명이 1조가 되어 컨베이어 벨트 양쪽에서 일한다.

피킹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다.

보통 계약직과 고정직이 담당하는데

인력이 부족한지 일용직을 번갈아가며 썼다.


다음날도 음료파트에 배정됐다.

그러다 고인물을 제대로 만났다.

무려 정직원이 납시셨는데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따라갈 수가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직원의 보조를 맞췄다.


정직원은 나를 보고 조롱 섞인 말을 계속 내뱉는다.


왜? 힘들어요?

거기 아니고 저기, 아 몇 번을 말해

아~진짜...

물류센터에서 일하면 무언가가 성격에 영향을 주나 보다.

다들 뭐가 그리 예민한지 톡톡 쏘아붙이며 말한다.

조용하게 넘어갈 일도 크게 떠들어 무안을 준다.


필요 이상으로 나무라고 조롱한다.


일 자체는 할만했지만

중간중간 쏘아붙이는 말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1주일 정도하고 그만두었다.

성실하게 일하니 나무람은 줄어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욕먹는걸 계속 보는 게 힘들었다.


아직 덜 배고픈가 보다.

이 정도도 못 참아 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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