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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Feb 20. 2024

조용하면 사고 치고 있는 중이에요.

소리 없이 강한 너

아이를 키우면서 늘 긴장감을 안고 산다.


오늘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아이가 는 행동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대처해야 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 아이만 키울 때는 이런 경계태세가 오래가지 않았다. 녀석이 한창 기어 다닐 때 물티슈 한 통을 다 꺼내놓고 물티슈 파티를 했던 것 외에는 딱히 무언가 뒤지거나 어지른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 손에 닿는 곳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전부 녀석의 장난감이었, 다 놀고 난 뒤 정리도 곧잘 했었다.


그렇기에 둘째가 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물건간수에 소홀 수밖에 없었다.


항상 시끌벅적해야 하는 집안이 조용한 어느 날이었다.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뭐지? 순간 위기임을 직감했다.


냄새를 따라서 근원지를 찾아갔는데, 꼬마 녀석이 소중한 내 핸드크림을 온몸에 바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피부 좀 좋아졌니?


잊고 있었다. 꼬마는 여자아이란 사실을...


엄마가 하는 것은 다 궁금해하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의 소중한 핸드크림은 반이상이 사라졌다.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서 접시에 한가득 담아 식탁 위에 올려두고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있어야 할 파스타 면발이 식탁 위며 의자 위며 사방팔방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팠던 녀석이 살금살금 다가와서 맛보려다 쏟은 것이다. 얼굴과 옷에는 이미 파스타소스 범벅인 아이를 보고 있자니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 육아의 매운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차라리 무언가를 어지르고 쏟아버리는 정도의 사고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화는 나지만 그까짓 거 치우고 씻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꼬마의 방안이 고요한 어느 날이었다. 초저녁이라 아직 잠들 리가 없는데.. 하며 뭘 하는지 궁금해서 방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두운 방 안의 공기는 평소와 달리 차갑고 섬뜩했다. 찰나였지만 의 촉은 정확했다.


안 좋은 예감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


꼬마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이불 위에는 피가 흥건했, 그 앞에는 택배상자와 가위가 놓여 있었다. 만들기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힘조절을 잘못해서 그만 손에 깊은 상처를 낸 것이다.


보통 같으면 울면서 뛰쳐나와야 하는데 많이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맥없이 누워만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재빨리 아이를 안았다. 명소리에 다급히 뒤따라 들어온 남편이 아이의 손을 지혈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옷가지를 챙겨서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 고생했다고 유효기한 지난 쿠폰을 준 딸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손을 살펴보시더니, 힘줄이나 신경이 다쳤을 수도 있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가까운 정형외과를 추천해 주셨다.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받고 허탈하게 나온 우리의 머릿속엔 온통 '전신마취'라는 단어만 남아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꼴딱 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녀석의 컨디션은 떨어지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아이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다행히 신경손상은 없다며, 그 자리에서 바늘과 실로 상처부위를 예쁘게 꿰매주셨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꼬마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아프진 않을 텐데 꿰매는 느낌이 나서 우는 거라며 아이를 진정시켜 주셨다.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꼬마는,

"휴.. 오른손을 다쳐서 다행이야. 공부 안 해도 되잖아?"라며 애써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언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이제 좀 살만한지 녀석의 입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오른손에 생긴 상처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저렇게 해맑다니.. 꾹 참고 잘 버텨 준 딸이 대견했다. 어쩌면 요 녀석이 나보다 더 강지도 모르겠다.


마음 약한 는 이럴 때가 제일 힘들다.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쉽게 울지 못한다. 아이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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