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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Apr 05. 2024

[prologue] 나의 기억은 자만이었다.

기억회로의 오류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좋은 오후다.


오랜만에 억상자를 찾아봤다.


묵은 먼지가 잔뜩 쌓인 상자 안에는 그간의 여행기를 적어 놓은 수첩들이 가득 차있었다. 곡히 적어 놓은 글들을 보니 새삼 뭉클해졌다.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면서 어쩔 수 없는 계획형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첩 뒷장에서 버스와 기차시간표를 출력해서 내가 타야 할 시간에 표시해 둔 것을 발견 것이다. 이 정도까지 여행에 진심이었구나..


여행준비물, 일정표는 기본이고, 내가 갈 장소들의 주소, 전화번호, 운영시간, 입장료등을 적어두었다. 심지어 지도 작게 축소해서 붙여두었었다.


여행하는 데 있어 지도가 가장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어딜 가도 인터넷 사용이 어렵지 않은 요즘엔 쉽게 공감하지 못할 옛 감성이다.



아들과의 여행을 기록한 수첩을 살펴봤다.


어린 시절의 아들은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림으로 그날의 일들을 적어놨다. 눈에 힘을 주어야지 겨우 해독할 수 있는 글자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8살의 나이답게 세상 단순한 표현들이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게 잘 적어놨다. 깨알같이 그려 넣은 그림도 있었다.


글을 읽어 가던 중,

'이제 새로운 호텔로 간다'는 내용을 봤다.


응? 싱가포르에서 지낸 호텔이 두 곳이었던가? 녀석이 쓴 글이 의아하여 호텔 정보를 적어둔 페이지를 펼다.


아뿔싸~~!!


지막 호텔이 정말 좋아서였을까?

제일 먼저 2박이나 투숙했던 호텔은 내 기억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한 곳에서만 전 일정을 소화했다고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예쁘게 사진도 찍었는데..


어쩐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호텔 밖풍경은 최근에 갔었던 호텔과 판이하게 달랐다.


내 기억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분명 실내로 MRT역까지 연결되고, 가는 길에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한 내 오판이었다.


여행지에서 그날의 일정이 끝나면 매일같이 기록해 었는데, 졸린 눈 비벼가며 적은 것들이 이렇게 소중하게 쓰일 줄이야..


여행 사진까지 찾아보면 모든 일들을 억회로에서 복구할 수 있으리라..


잊고 있던 아들과의 여행은 과연 어땠을까? 우리의 지난 여행을 하나씩 추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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