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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Apr 12. 2024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아들과 첫 해외여행

심장이 두근두근 눈치 없이 나댄다. 8살 아들과 난생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침이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 막상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현실을 자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지니 겁을 상실한 모양이다. 아이와 함께 가서 잘할 수 있을까.. 뒤늦게 걱정이 한가득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신나게 예약버튼을 눌러댄 내 손가락을 혼내고 싶은 마음이다. 왜 그랬을까? 자책해 봐야 소용없다.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공항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이 더 크다. 이미 저지른 일..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한껏 들뜬 아들은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어 다. 나름 성의 있게 녀석의 말을 듣고 호응해주려 했으나 무슨 말인지 사실 귀에 들리는 것이 없다. 상투적인 표정과 기계적인 대답으로 일괄할 뿐이다. 진 물건은 없는지.. 공항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들과 현지에 도착해서 이동하는 동선을 체크하는 등 뇌는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달리던 버스는 순식간에 우리를 공항에 내려줬다. 리바리 짐을 챙겨 들고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능숙하게 여권과 페이퍼티켓을 건넸다. (아~~ 그리운 페이퍼티켓!)


당시에는 항공편을 예약하면 e-ticket을 메일로 보내줬었다. A4용지로 출력해서 체크인 카운터로 가면 보딩패스를 받을 수 있다. 지상 승무원이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라고 인사를 건네면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기계가 대신하고 있어서 사를 주고받을 수가 없다.


체크인을 해 주던 승무원이,

"마일리지를 정말 많이 모으셨네요?"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네~ 그렇죠.."라며 어색하웃으며 대답했다.


젊은 시절 여행 다니면서 힘들게 모은 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 나의 목표는 오로지 유럽이었다. 하지만 주부인 내가 갖고 있는 현실적 장벽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에.. 나 홀로 대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멀고 먼 여행길에 겁도 없이 오른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명분과 함께..



어린 꼬마와 단 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소소하게 체험하고 구경하러 다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여행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두배로 커진 긴장감과 두려움이 앞선 마음은 쉴 새 없이 콩닥거린다.


"엄마! 이제 어디로 가면 돼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새가 없다. 정신 차리자! 궁금한 것이 많은 꼬마친구에게 앞으로의 이동동선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며 안검색대로 향했다.


공항은 설레지만 게이트 앞은 지루함의 절정이다.


특히나 참을성 없는 아이들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아들과 면세구역을 구경 다니기 시작했다. 각종 기념품과 신기한 장난감들에 빠져있는 것도 잠시였다.


정처 없이 드넓은 공항 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드디어 녀석의 관심을 끌만한 곳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이미 한창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놀이터가 자그맣게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항 놀이터


공항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안 녀석은 이미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다. 드디어 원하는 곳을 발견한 꼬마는 옷이 더러워지건 말건 바닥을 쓸고 다니며 온몸으로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새 또래 친구와 인사도 나누고 함께 놀고 있는 너의 사교성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한참을 즐겁게 놀고 난 뒤 탑승시간이 다가오자 게이트로 향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이미 내 커다란 가방 안에는 녀석의 지루함을 달래 줄 무기들이 가득하다. 긴 비행시간을 위해 떠나기 전 잔뜩 준비해 왔다. 무거운 가방을 치켜 메고 한 손에는 여권과 보딩패스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끝없는 자신감을 부여하면서 녀석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하기 전 부산스러움이 참 좋다. 기내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좋다. 물론 국적기마다 나는 냄새는 다르다. 그 다름이 좋았다. 항상 같은 곳이 아닌 낯선 곳에 있는 것이 좋다. 이 '좋음'이 긴장된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고 있다.


아들은 창밖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서서히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로 나가는 비행기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아, 맞다! 엄마 사탕 먹어도 돼요?"


이륙할 때 기압차로 고생할 아이들을 위해서 지난 가족여행 때 사탕을 준비했었다. 어느새 커서 이제는 먼저 챙기는 녀석이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아들이 늘 외치고 다니는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성격 급한 녀석은 비행기가 활주로로 나가기도 전에 사탕을 입에 물었다.


무사히 이륙 후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다. 승무원이 작은 퍼즐을 가져다주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꼬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뜯어봤다.


머지않아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키즈밀이 먼저 나왔는데, 알찬 구성의 음식을 보자 녀석의 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에요!"

키즈밀이 최고!


잔뜩 흥이 오른 녀석이 말했다. 고작 8년 차를 살아가는 꼬마가 인생을 거론하다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친절한 미소를 띤 승무원이 계속 무언가를 가져다주며 극진한 대접을 해주니 분이 좋은가보다.


한껏 들뜬 녀석은 식사를 마치고 가지고 온 보드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집중하면 시간을 잘 보내는 녀석 덕분에 이제야 나도 잠시 쉬어 본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았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덥고 습한 공기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비싼 엠블럼의 하얀색 고급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원하던 택시는 아니었지만 대신 안전할 거란 생각에 올라탔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아저씨는 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아이에게 한없이 친절하신 기사아저씨 덕에 싱가포르의 첫인상은 '맑음'이다.

사진까지 찍어놓고 기억을 못 하다니


무사히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까지 마치고 나니 모든 긴장이 풀렸다. 남은 기간 동안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걱정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다.


아들의 일기

싱가포르 저녁에는 야경이 엄~~ 청 예쁘다. 그래서 싱가포르 밤은 멋있다. 싱가포르는 더운 나라라서 1분 아니면 3분도 더 못 서있다. 그래도 기분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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