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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Aug 09. 2024

꿀벌마을 코츠월드

Cotswolds

드디어! 기대하던 꿀벌마을, 코츠월드에 가는 날이다. 6개 주를 걸친 구릉지대에 있는 약 200여 개의 마을을 통틀어 코츠월드라고 부른다. 건물이 꿀벌색으로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아쉽게도 마을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이 많지 않았다. 버스는 2-3분마다가 아닌 1-2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신중하게 구경하고 싶은 마을을 선정하고 각 지역마다 얼마의 시간을 쓸 것인지,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버스 시간등을 미리 생각해야 했다. 정해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기에 오늘은 그만큼 중요하다.


여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해 본다. 


옆 침대의 할머니는 오늘 딸과 약속 있다며 아침 일찍 나가신다고 하셨다.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다. 행지에서 만난 나의 첫 룸메이트.. 특별한 인연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짐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갔다. 유스호스텔이지만 호텔조식 못지않게 아침메뉴가 근사했다. 보통 빵과 시리얼 정도만 제공하는데 뷔페 못지않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푸짐하게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아와서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혼자 밥 먹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오전 9시. 오늘을 시작할 준비가 끝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영국의 베니스
Bourton on the water


기차를 타고 '모턴인 마쉬'에 도착서 바로 ' 온 더 워터'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가까웠다. 네모난 몸체에 얹은 삼각지붕.. 집을 그려보라 하면 흔히들 그리는 모양의 건물에 귀여운 색감이 더해지니 마치 영화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코츠월드 여행이 시작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렘 가득한 마음이 한껏 들떠서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정신없이 창밖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순식간에 '버튼 온 더 워터'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B&B(Bed and Breakfast)까지 가는 길 역시 수십 번 구글지도에서 보고 왔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쭉 걸어가니 예쁜 3층집이 나왔다. 시나 뾰족한 삼각지붕이 인상적이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조심스레 을 누르자 노부부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현관 들어서자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바로 옆에 있는 응접실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꽃무늬 커튼과 식탁보가 자연채광을 받아 반짝였다. 익숙한 부 구조가 정겹다.


아저씨는 안쪽 주방에서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하셨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부산스러운 아침 분위기가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에 내 방은 당연히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아주머니께 짐을 맡정을 떠나본다.


숙소를 찾느라 빠르게 지나쳤던 길을 이번엔 한가로이 걸다. 놓쳤던 경치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졸졸 흐르는 낮은 강 위 놓인 꿀벌색 다리가 운치 있다. 영국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 작은 마을은 실제 베니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 흐르는 수로좀 더 화려한 건물들, 관광명소답게 사람들이 넘쳐나는 베네치아와 달리 이곳은 소박하고 온화하다.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강물에는 천둥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음악처럼 경쾌하게 들렸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의 건물들이 어우러져서 동네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드문드문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다채롭게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쳐간다. 기분이 상쾌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구경하기 위해 살며시 들어가 본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좁은 가게 안을 슬쩍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가게 주인이 급히 쫓아 나와서 나를 불렀다. 그녀는 기념품이라며 카드와 볼펜을 수줍게 내밀었다.


"어머나~ 감사합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이곳으로 여행 온 것을 환영한다며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마움에 감동받은 나는 카드와 볼펜을 소중하게 바라보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꽃향기 가득한
Cirencester


칼같이 시간을 지켜서 도착한 버스를 타고 코츠월의 두 번째 마을로 향했다. '사이렌세스터'는 코츠월에서 규모가 큰 마을에 속한다고 했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을 거라 기대하며 여유 있게 시간을 확보해 놓았다.


약 30분을 달려서 사이렌세스터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도로 옆에 천막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장 서는 날인 듯했다. 외국에서 플리마켓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롭다. 활기찬 분위기 신기한 물건도 많기 때문이다.  구경하다가 다시 길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건물 사이에 'The woolmarket'이라고 쓰여있는 아치 너머에 새로운 공간과 마주했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 이끌려 나도 모르게 들어갔다. 은 광장에는 양 동상이 있었. 곳곳에 카페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도 없고 골목은 한산했다. 딱히 볼거리가 없자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작은 골목에 들어섰다. 상점들이 아기자기하게 있었다. 마치 소인국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잔잔한 색감의 벽돌이 운치를 더했다. 테리어, 가드닝 등에 사용되는 예쁜 소품을 파는 빈티지 숍에는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골목 안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식당을 찾아볼까...


골목골목을 누비며 부지런히 걷고 있는 그때,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피자와 파스타는 어디를 가도 중간 이상은 할 것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무작정 들어갔다. 식당 내부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아... 잘 못 들어온 것인가...'


후회하고 다시 나가기엔 이미 늦었다. 덩치 큰 남자가 활짝 웃으며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 줬기 때문이다.


"어서 와요. 안쪽에 자리 많아요. 편한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네.. 여행 왔어요."


"와우~ 반가워요. 10년 전에 어학원을 다닐 때 한국인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한국인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스몰토크를 이어가며 메뉴판을 살펴보는 나는 꽤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혼자라고 더 이상 어색해하지 않았다.


주문한 봉골레 파스타가 나왔다. 커다란 접시에 양도 푸짐했다. 야무지게 조갯살을 발라먹으며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배불리 먹은 점심은 대만족이다. 계산을 마친 받은 영수증꽂이 안에는 거스름돈과 함께 민트초콜릿 들어있었다. 세심함에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소정의 팁을 남기고 주인아저씨와 쿨한 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왔다.



다음 버스 시간까지 약 1시간이 남았다. 소화도 시킬 겸 가보지 않았던 길로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점점 마을 외곽으로 빠지는 위기다. 길이 맞나 의문이 들면서도 이미 발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기에 걸음을 쉽게 멈출 수 없었다. 그때 성곽처럼 생긴 큰 벽에 'Park'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보였다.


'오호~ 이쪽으로 가면 공원이 있나 보네?'


호기심에 녹색 이정표를 따라서 걸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는 한적했다.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온통 같은 색을 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하루 종일 벌집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 달콤함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관찰하며 걷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솔솔 불어왔다. 기분 좋은 꽃향기를 따라 멈춰 선 곳은 어느 그림 같은 집 앞이었다.



'라일락향기 같은데.. 아닌가? 무슨 향이지?'


기억 저편에 있던 익숙한 향이다.


봄을 준비하는 식물로 뒤덮인 집 앞에 정원이 없지만 마치 정원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향기를 전해왔다. 영롱한 꽃망울이 싱그럽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며 아름다운 지금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멀지 않은 곳에 공원 입구가 보였다. 굉장히 큰 검은색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언뜻 봐도 규모가 상당히 커 보였다.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은 걸어야 할 것 같은 크기였다. 안쪽에는 곧게 뻗은 길이 시원스레 펼쳐졌고 양쪽으로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입구부터 언덕이 시작되는 잘 가꾸어진 내부는 깔끔한 풍경화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주위에는 산책을 즐기는 이가 많지 않았다. 모험도 중요하지만 버스시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아쉽지만 다시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림 같은 서점, 예쁜 공주님 옷가게 등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지만 가게마다 빠르게 들락거리며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이제 코츠월드의 마지막 마을만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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