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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Apr 15. 2022

인터뷰 기사

현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느정도의 슬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사는 것 자체가 슬픔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인데요. 오늘 북토리매거진 저자 인터뷰에서는 '슬픔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집 『사라지는 윤곽들』의 권덕행 시인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권덕행 시인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라지는 윤곽들』을 쓴 시인 권덕행입니다.

시를 쓸 때는 몰랐는데 시집을 내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네요. 이렇게 독자들을 어렵게 만나게 되다니요... 시를 쓰는 순간과 시를 읽는 순간이 일치되는 지금, 저는 무척 설레고 무척 기뻐요.


『사라지는 윤곽들』이 첫 시집이라 들었는데요. 기분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네, 드디어 내 집이 생겼구나, 했어요. ‘시의 집, 시집’ 말이에요.
실체 없는 말들로 떠돌던 내 자음과 모음들에 집이 생겼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흩어졌던 마음들을 여기에 모았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이제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게 됐고 또 훨훨 떠나보낼 수도 있게 됐어요. 나를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詩를 읽고 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은데요. 시인님에게 詩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를 오래 썼어요. 아니 띄엄띄엄 가늘게 오래 썼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잘 써질 때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아주 오래 시를 멀리한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도 늘 시집은 옆에 끼고 살았어요. 시는 제 글의 원천이었고, 슬픔에도 운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슬픔이 각을 잡기 시작하면 얼마나 유려하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지, 또 울음도 한 줄의 시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지은 최초의 문장과 최후의 문장이 될 거라는 것을 처연히 알려주었어요. 저는 시에게 제 인생의 많은 것을 들켰고, 많은 빚을 졌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서 뺨을 얻어맞고 시 앞에서 늘 울음을 터트렸네요. 시는 아름답고 경계심이 많은 장르예요. 상처와 불안과 콤플렉스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나와 닮아 있어요.


『사라지는 윤곽들』 권덕행 시인


그렇다면 시인님이 쓴 시 작품은 시인님을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음…. 애매하게 대답해야겠네요. 사실 제 시를 보여주면 이런 질문을 진짜 많이 들어요. “이거 니 얘기야, 이게 너야?” 하고요. 맞아요,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해요. 한동안 ‘부캐’라는 말을 많이 썼잖아요. 시를 쓴다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시의 문 앞에 나의 부캐를 세우고 끊임없이 그 사람이 말하게 해요. 그 사람의 말투를 빌려서 시를 쓰고 그 사람의 슬픔을 빌려서 시를 써요. 그래서 나는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해요. 그런 내가 쏟아내는 마음이 시인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시인님은 유독 슬픔의 감정에 몰입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 시인님에게 ‘슬픔’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슬픔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 슬픔이 열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슬픔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는 슬픔은 저와 동일시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을 전시하고 나면(쓰고 나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슬픔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게 돼요. 나는 이제 괜찮다는 ‘슬픔의 타자화’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될 때 내 슬픔은 다른 이의 슬픔과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 같아요. 잘 버틴 슬픔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 시집 『사라지는 윤곽들』에서 시인님은 특별하다고 느끼는 작품이 무엇인가요?

한편 한편을 오래 보듬어 왔던 것 같아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고치고 또 매만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시들이 사실 애틋해요. 그렇지만 마음을 곧추세우게 하는 시가 있어요. 이 시집의 첫 시 「기록에 관하여」와 마지막 시 「식물이 자라는 시간」이라는 시는 시에 대한 제 마음이 담겨 있어요, 첫 시 「기록에 관하여」에서는 나의 모든 중얼거림이 시가 되고, 비문처럼이라도 살아남고 싶었던 마음, 세상 가장 무거운 탄식을 줍고 다니면서도 나를 위로했던 시간이 담겨 있고 마지막 시 「식물이 자라는 시간」에는 아직 살아있지만 좀처럼 싹을 틔우지 못했던 나에 대해 얼마나 버틸 것인가 하고 아프게 물었던 시간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이 시들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시집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시를 썼어요. 그럴 때 나의 시는 일종의 기도와 같았어요. 삶의 모든 얼룩은 기도가 됐어요. 그런 마음으로 같이 읽어 주세요. 제 슬픔은 잘 지내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슬픔도 잘 지내기를 기도합니다.


[북토리매거진 · 김소은 기자]

http://www.booktory.kr/View.aspx?No=2278809




북토리 매거진 인터뷰 기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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