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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77

음식을 잘하려면 도구가 좋아야한다는데.

by 태생적 오지라퍼

그동안 잘 먹었는데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임팩트가 없었다는 뜻이거나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가

둘 중 하나이다.

아마 전자일 확률이 더 크다. 나에게는.

그만큼 나의 의식주 중에서 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고 엥겔 계수도 크다.

단 음식을 자주 해먹는 횟수에 비해서

(외식이 많지않다. 음식물 양 문제가 제일 크다.)

그릇이나 양념 등 도구는 많지 않다.

음식을 잘하기 위해서는 도구발이 중요하다는데 그말은 맞는 것일까?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이번 이사하면서

몽땅 버리고 갈 예정이다.

사용할만큼 사용했다.


처음 나왔을 때 샀던 비싼 커피머신에서 내려 마신 커피의 양은 총 100잔이나 될까 싶다.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라하지 않고

맛도 잘 구별하지 못하고

(힘들 때 마시는 믹스커피 빼고)

아들 녀석은 자기가 잘 내려먹을 것처럼 바람을 잡더니 여전히 S 카페 단골님이다.

이번 기회에 지인에게 넘겼다.

이제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소량의 그릇, 냄비, 후라이팬과 고기굽는 그릴 두 개 그리고 작은 사이즈의 믹서기와 감자나 계란을 삶는 찜기 빼고는 없다.

이 중에서 몇 개 빼고는 다 버리고 서울을 뜰 생각이다.


그래도 버리기 전.

이사 한달전에 이 그릇으로 꼭 먹고 싶은 것들이 있다.

따끈따끈한 오뎅국, 갈비찜, 소시지볶음

그리고 걸쭉하고 맵쌍한 참치나 꽁치 김치찌개인데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 메뉴들이라 선뜻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픈 사람이고 혈당관리도 필요한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굳이 할만큼 배짱이 크지 못하다.

남편을 위해서 굴 한 봉지 사서 무랑 달달 볶아서 굴국을 끓여두었고

시금치 한 단 사서 데쳐서 나물해놓고 시금치 된장국 끓여두고

무수리인 나는 이틀 전 볶아두고 손도 대지 않은 제육볶음을 다시 볶아서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게 문제)

상추에 저민 마늘 넣고 쌈장 발라 먹었다.

내 점심은 12시 인데 남편 점심은 13시이고

내 저녁은 6시면 늦는데 남편 저녁은 20시이다.

참 식사 시간까지도 절대 맞춰지지 않는 환장의 커플이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본 알이 꽉찬 도루묵 구이가 먹고 싶지만 마트에 도통 올라오지 않는다.

어제는 학교에서의 두 끼를 모두 잔반 중심의 도시락으로 해결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물 끓여서 따뜻하게 먹으니 최고였고

역시 같은 반찬이지만 집에서는 안 먹혀도

학교에서는 잘 먹히는 마법과도 같은 능력이 작용된다.

오후에는 주방에 있는 어느 것을 또 정리해볼까나.

몇장 남은 김밥김 처리를 위해서 간단한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갈까.

아니면 오늘 먹고 남을 예정인 상추와 야채 종류

다 넣고 샐러드를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이사 가기 전 냉장고를 다 비우고 깨끗이 청소를 하고 가는게 나의 최종 목표이기는 한데

과연 가능할런지는 모르겠다.

가열차게 달린 오전을 뒤로하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오후 연구에 몰두해보자.

해야할 일은 여전히 많고 나의 체력과 여력은 조금 모자라다.

아무래도 맛난 것을 조금 더 먹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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