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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주는 시그널

겸허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인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한다.

늘상 다니던 3년간의 출근길이다.

익숙하기도 한데 낯설기도 하다.

지하철의 사람들은 늘상 그렇듯이 자연스러운 표정의 출근길이다.

마침 마지막 학교 아이들의 등교 시간과 겹친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밝게 인사를 하는 그들을 보니 귀엽기만 하다.

대학생들을 보다가 중학생을 보니 더더욱 귀엽기만 하다. 나이차가 그런거다.

3학년 야구부들은 이제 진학할 고등학교도 결정되었다하고(잘해라.)

옆에 여학생들과 함께 등교하는 것을 보니

그 사이에 그들이 여자친구를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음을 느낀다.


공복으로 방문한 병원에서는 혈액검사도 하고 혈압도 측정하고

3개월만에 한번씩 맞는 비타민 D 주사도 맞고

어제부터의 간지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알러지라면서 항히스타민제 주사와 약을 처방해준다.

알러지의 원인은 먹거리일수도 공기 중의 무언가일수도 있는데

먹거리라면 며칠 약을 먹고하면 증세가 나아질 것이고

공기 중의 무엇때문이라면 다시 증세가 발현될 것이라는데

일단 어제보다 증세가 심해지지는 않는 듯 하다.

주사를 맞고 30분쯤 지나니 약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졸음이 몰려온다.

만추인 을지로를 즐겨볼까하는 마음이 쏙 들어간다.

어제도 은행나무 멋진 정동길과 시청앞을 걸어볼까하다가 간지러움 이슈로 귀가를 서둘렀었다.

이처럼 컨디션이 별로이면 계절을 즐길 수도 없다.

물론 사진도 찍을 수 없고 글을 쓰기도 힘들어진다.


간신히 졸음과 배고픔을 참고 집에 와서

푸짐한 아침을 먹고는 잠을 청해본다.

아니다.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니고 잠이 쏟아져서 누은거다.

자다가 한번 다시 몸이 확 간지러워져서 깨서 로션과 약을 바르고

그리고 또 다시 저절로 눈이 감기고

정신을 차렸더니 이미 시간은 오후 네 시가 되어가고 있다.

어찌 알았을까나? 내가 조금 여유 시간이 있는 것을 말이다.

다행이기도 하다. 내일 수업이 있었다면 힘들뻔 했다.

푹 쉬고 먹고 자고를 반복해보자.

내 몸이 보내는 시그널을 재빨리 알아들어야 한다.

그것을 간과하기에는 이미 나는 많이 늙었고 버텨낼 체력도 없다.

질병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마땅할 나이와 컨디션이다.

약 먹고 쓴 맛을 감추기 위해 먹을 사탕을 하나 사러 나갔다 왔더니

일몰 시간의 멋진 하늘이 보였다.

오늘 사진은 이것으로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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