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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느 일요일 오후 짧은 단상

먹고 쉬고 먹고 쉬고

by 태생적 오지라퍼

의미 있고 즐겁기도 한 어제 토요일 서울에서의 시간이었지만 고되기는 했나보다.

오늘은 아침 먹고 졸다가 점심 먹고 졸다가의 연속이다.

아마도 이른 저녁을 먹고는 곧장 자게 될 확률이 99% 정도이다.

어제 오늘 유성우가 떨어지는 천문현상이 예고되어 있었으나 내 졸음을 쫓기에는 택도 없다.

내일부터 월 ~ 금까지는 마지막 강의와 평가가 이루어지니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한 주일이 될 것 같다.

아마도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니

내 몸이 반사적으로 오늘 쉬어야한다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도 많이 먹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도곰탕에 스시와 국수 그리고 장어덮밥에

진득한 케잌과 야채김밥은 포장해와서

오늘 아침으로 먹었다.

내 몸과 정신은 분명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놀라운 오토매틱 시스템이다.


내일 항암일인 남편은 혼자 서울로 가서

절친의 서대문 오피스텔에서 하루 혹은 이틀을 묵으면서 항암 관련 일정을 처리하고 온다는 계획이다.

막내 동생이 자기네 집으로 오라했지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이번 주 월요일에는 미국 조카가 이빨 치료 겸 잠시 다니러 나와서

연말을 가족끼리 즐기게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계속 강의가 있으니 동행이 힘들다.

1월 항암때는 여행삼아 함께 올라가자고 이야기해 두었다만

그때 또 무슨 일이 생길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남편을 조치원역까지 태워다 주고

내일 아침 일찍 엔진오일을 교체할 카센터도 찜해두고

따뜻한 물을 받아서 목욕과 욕조 청소를 한방에 끝낸다.

로봇청소기를 돌리면서 수동 청소기로 세밀한 대청소도 끝냈고

바쁜 일주일을 위해서 계란 볶음밥과 닭갈비 볶음밥 밀키트도 구입해놓았으며

고추장찌개와 황태국도 만들어두었다.

이만하면 바쁜 다음 주를 버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학교 앞 맛난 식당의 밑반찬만 사가지고 온다면 말이다.


졸린 와중에 인스타를 뒤적이다가

오늘 대문사진을 발견하고 큭큭거리고 웃는다.

UN에서 나를 다시 청년으로 만들어주었다.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청년은 너무하다.

꽃중년도 아니고 영포티도 아니고

그냥 아직은 노년말고 중년이라고 불리웠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내 희망은 소소하다.

정년연장 관련 논의는 항상 유불리가 생기고

논쟁이 될 수 밖에 없다만

나이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열린 생각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선배 대접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마냥 이상한 뒷방 노인네 취급을 당하지 않고

2~3년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은 있다.

조용한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눈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워지지 않았으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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