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은 언제부터 입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여름이라고 인정한 그 순간부터

by 태생적 오지라퍼

친구들이 모두 갱년기라고 덥다고 옷을 마구 벗어대기 시작하고

얼굴에 땀이 비오듯이 떨어지고 부채질을 쉼없이 해대고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를 반복하곤 할 때도

나는 늘상 추운 것만 걱정이었고

더운 것이 뭐가 힘든가 싶었었다.

그래도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은 많이 나아져서

건강이 좋아졌다 기초 체력이 올라왔나 짐작만 할뿐

더위에 지쳐서 정신 못차리는 날은 일년에 며칠 되지 않았었다.

귀신처럼 친정 엄마가 하신 말이 있다.

한 여름 더위에 지쳐서 수박을 먹으면서도

<며칠만 참으면 찬바람이 분다.> 하셨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았었다.


그랬던 내가 덥다 진짜 지구가 더워지고 있나보다를 실감한 것이 작년이었다.

많이 덥더라.

나같은 체질도 더워서 잠을 못자고

에어컨이 꼭 필요하고

방바닥에 딱 붙어서 잠을 자곤 했었다.

그제서야 여름이 더 힘들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만

아직도 겨울과 여름 중에 더 싫은 것은 추운 겨울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차라리 추운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더만

그것은 내 어릴 적 추위를 못 느껴 봐서 그런 것이다.

진짜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었다.

귀가 얼고 손과 발이 꽁꽁 어는 그 추위의 힘듬을 못느껴봐서 그런 것이다.

사람은 딱 자기가 경험한 경험치만큼만 똑똑한 법이다.

그러니 나이든 어르신 말을 듣는 일이 필요하다만

젊은 나이에 그 말뜻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2주전부터 긴팔 속옷이 아니라

나시 속옷을 입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사이즈를 산다고 샀는데도 몸에 밀착이 되어서인지

그것을 입고도 옷을 너무 많이 입고 나서서인지

등판이 간지럽더니 땀띠가 조금 올라왔다.

내 피부는 켈로이드 피부여서 조금만 접촉이 심하면 금방 간지럽고 따갑고 무언가가 올라오고

한번 상처가 생기면 오래되어도 그 흔적이 남고

잘 아물지 않는다.

어려서 불주사 자국도 친구들보다 오래토록 남아있었고 수두 자국도 물론이고

아들 녀석을 임신했을 때 생긴 다리쪽 물집은

아들 녀석이 5살이 될 때쯤까지 사라졌다 다시 생겼다를 반복했었다.

지금도 곳곳에 그런 장소들이 숨어있다.

요즈음 최고의 발현 장소는 오른쪽 발목 부근이다.

양말목 고무줄이 닿는 바로 그 부분이다.

건강하면 사라졌다가 몸이 허약해지면 다시 나타나는 불치병이자 동시에 내 건강의 지표인 것이다.

오랜만에 등판에 올라온 땀띠 모양의 작은 수포를 긁어댔더니 딱지가 앉았고

혹시 대상포진인가 의심해봤으나 그렇다면 이렇게 통증이 없을리 없으니

내 예민한 피부가 갑작스런 더위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잠정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아직은 아침, 저녁은 서늘하다. 내 기준으로는.

반팔이나 반바지(아니 칠부바지라도) 입고 밖을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실내에서는 더 덥지 않다.

기차나 지하철에서는 에어컨도 틀던데 말이다.

할 수 없이 긴팔 두꺼운 옷을 꼭 들고 다녀야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더위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지난 주 수업까지는 추워요를 외치는 학생들이 있었다만

아마도 이번 주 수업에 가면 더워요를 외칠 것이 분명하다.

반팔은 언제부터 입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제 봄이 끝났어. 여름의 시작이야.

이런 마음의 판단이 섰을 때였던 것 같고

그 시기는 내 기준으로는 5월 15일이었다.

스승의 날 때 쯤 나는 반팔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것 같다.

교사 첫해부터 쭈욱이다.

아직은 아니다.

찬란한 봄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그런데 여름꽃이라고 소문난 양귀비가 벌써 폈더라.

꽃들이 나보다 먼저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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