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55

식물에 눈에 들어오게 되는 나이

by 태생적 오지라퍼

광합성이야기로 식물 단원 수업을 시작하게 교과서는 대부분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은 식물의 중요성에 대한 기본 이야기를 한 단원쯤 넣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광합성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식물을 심는 것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줄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과

식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소재가 들어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식물 단원을 시작하면서 여름 방학 과제를 구글 클래스룸에 올려두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온실(비닐하우스 포함), 옥상정원, 식물공장 등을 방문하게 되면 인증샷을 올리라는 것이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시골 친척집이나 다른 공간들을 방문하는 경우 식물과 관련된 이런 내용을 한번 되새겨 보라는 의미이다.

학교 근처 창경궁에 있는 조선시대 온실도 알려주면서 말이다.

2학기 진로체험일, 마곡역 근처 사이언스센터를 갈 예정인데

그곳 바로 옆이 서울식물원이라 그때 함께 방문 계획도 물론 세우고 있다.

이렇게 식물 수업에는 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살펴보는 일이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 여름인 요즈음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보이는 식물들이 있다.

진한 초록색 천지에 강렬한 색을 자랑하는 능소화이다.

담벼락이나 교각옆으로 늘어뜨린 자태와 크기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시기가 되면 인스타에 도배되듯이 능소화 사진이 올라온다.

나도 몇 번인가를 찍었는데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능소화색은 더 진하기도 하고 연하기도 하고 잘 찍히기도 하고 안나오기도 한다.

식물은 변함없는데 빛이나 위치나 핸드폰이나 내 손의 각도가 다를 뿐 능소화는 아우라가 넘친다.


지난주부터는 배롱나무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분홍색도 있고, 흰색도 있고 하늘과 맞닿은 높이에서부터 배롱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을 달래주는 꽃이다.

나라꽃 무궁화도 피었다.

여전보다 사이즈가 커진 것 같은 무궁화는 오래된 학교 운동장 중심에는 꼭 있는 식물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조회를 했던 그 옛날에 심었을게다.


내가 어렸을 때 대표꽃들은 모두가 자잘한 크기였다.

채송화, 봉숭아, 과꽃, 메꽃, 분꽃, 달맞이꽃, 접시꽃, 계란꽃, 코스모스...

모두 다 작은 크기이고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며 은은한 색의 꽃들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이쁜 여자들을 비유할 때 꽃에 비유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고

그 이쁜 여자들의 스타일은 작고 앙증맞고 귀엽고 여리여리하게 말랐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절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때도 아니었고 지금도 물론 아니다.

(코스모스가 되어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 비해서 요즈음은 꽃들도 사이즈가 커지고 색도 분명하며 그래서인지 이름모를 식물들이 많아졌다. 나의 무지이기도 하고 외래종 식물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생물의 다양성이란 부분에서는 좋은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식물들을 이용하여 정원이나 꽃집이나 심지어 결혼식 부케도 개성이 드러나게 구성된다.

식물도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여 달라진다. 모든 것은 마케팅과 연결되어 있다.


뚝섬 정원박람회를 다녀온지 한 달 쯤 되었다.

그날 다양하고 이쁜 많은 식물을 보았지만

그래도 내 맘속에 남아있는 것들은 행사를 위하여 일부러 심은 꽃들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꽃을 피워낸 식물들이었다.

식물들이 주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나는 식물의 생명성을 고귀하게 생각한다.

척박한 땅에서 버티고 버티는 식물의 힘을 애처롭지만 존경한다.

이 세상은 동물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식물이 없다면 동물은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식물은 지구계에서 결코 이름없이 지나가는 조연의 역할이 아니다.

이런 점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좋은 주제나 수업안이 있었으면 한다.

곧 정년퇴직인데 아직도 수업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만...

식물의 소중함을 알려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식물이란것이 어느 정도 늙어야만 눈에 보이고 알게 되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식물 조기 교육이란 정녕 불가능한 것이려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