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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60

새로운 루틴의 탄생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갑자기 뜬금없이 양배추쌈과 강된장이 먹고 싶었다.

갑자기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즉시 해먹는 것이 정답이다.

양배추 반개 2,000원 그리고 튼실해보이는 버섯 3,000원 어치를 사가지고 왔다.

양배추는 반의 반을 잘라 찌고

버섯은 간장베이스로 볶고

냉동실의 엄나무순과 취나물 남은 것을 탈탈 털어내 양념하고

가지, 두부, 양파, 대파를 넣어 강된장을 지지고

어제 먹다 남은 감자고추장찌개를 뎁혀 놓았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많은 음식양에 놀라서

이웃에 동생이나 지인이 한 명쯤은 살았으면 나누어 먹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훨씬 나은 것은 사실이다.

멀리 있으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게 당연하다.

1년에 큰 마음 먹어야 한번 보는 친구와는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요새는 그래도 카톡이나 영상통화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재료만 포장해와서

점심은 칼국수를 끓여 먹고 저녁에는 그 국물을 베이스로 볶음밥을 해먹었다.

하나의 음식으로 두 끼를 해결하는 신공을 보낼 수 있었으니 행복했다.

역시 레전드 맛집의 칼칼한 국물의 특별한 맛이 유지되고 있었다.

맛집은 특이하고 새로운 맛이어서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원래 오리지널의 맛이 좋아서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 칼국수는 후자에 속하고 나는 후자에 속한 맛집을 좋아라 한다.


우리의 입맛은 먹던 것, 늘상 먹을 수 있는 것에 후한 편이다.

과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관성이라고 한다.

운동하던 물체는 그 운동을 계속하려 하고 정지해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있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도 이런 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를 습관이라고도 하고 루틴이라고도 하고 징크스로 확대하기도 한다.

올해 들어서 나는 저녁을 준비해두고 아들 녀석을 퇴근을 기다리고 동안

브런치에 짧은 글을 쓰는 것을 루틴처럼 진행하려고 노력 중이다.

상반기에는 그럭저럭 나의 루틴을 지켰다.

가끔씩 출장 및 기타 행사등으로 아주 피로했던 날을 제외하고 말이다.

저녁 반찬이 맛있게 자연스럽게 준비되는 날은 그날 글감이 자연스럽게 생각나곤 했다.

저녁 반찬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안되는 날은 글도 버벅거리고 오래 걸렸다.

나의 새로운 징크스의 출현일지도 모르지만

저녁을 먹으며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글을 쓰면서 그 날 하루를 되새겨 보는 좋은 습관이 이제 자리잡아가는 듯 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일기를 잘 쓰는 학생이었다.

며칠 밀렸다가 쓰는 일기는 잘 써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이미 해보았다.

먹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만드는 반찬이 절대 맛있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먹고 싶어야 요리하는데도 신이나는 법이다.

오늘 나는 신나게 저녁을 준비했다.

위 사진은 오늘 학생이 만들어준 음료와 지우개 하트이다.

아마 신나게 만들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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