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골목 탐방

그리움 한 가득

by 태생적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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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입니다. 서울의 골목을 돌아다니는 재미를 이제야 느낍니다. 하루는 왕십리역 주변을, 어제는 청량리역과 경동시장을, 오늘은 추억이 많은 이대앞과 합정역을 가보려 합니다.

학생 활동 인솔 답사 겸 갔던 왕십리역은 이름이 세련되지 않아서 그렇지 강북과 강남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어렵지 않은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물론 활동 장소는 역에서 언덕길을 꽤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차량 제공 서비스까지 해준다고 하니 괜찮을 듯합니다. 옛날에 지은 학교들은 왜 모두 언덕 중반에 위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딱히 일이 없고 날씨가 괜찮았던 어제는 경동 시장 나들이를 갔었네요.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고 평일 점심에도 빈자리 없이 꽉 찬 경동시장의 핫플 스타벅스에도 놀랐고 청량리와 왕십리가 멀지 않은 이웃 동네라는 것에도 놀란 하루였습니다. 그 많고 많은 점포를 돌면서 잘 다듬어 놓은 냉이 2,000원 어치, 삶은 우거지 시래기 3,000원 어치를 사들고 왔습니다. 냉이는 양념을 넣어 김에 올려 먹고 시래기는 된장에 무쳐서 밥 반찬을 하고 반은 감자탕에 넣어 먹으려고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오늘은 대학부터 대학원까지 쭉 나의 공간이었던 이대 앞을 들러보려 합니다. 지금은 많이 늙은 나처럼, 이제는 많이 낡아진 옛날의 핫플인 가미분식에서 주먹밥을 먹고 한 개는 포장해서 이번에 정년퇴직한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가져다주려 합니다. 친구도 그 공간에서 같이 지냈었거든요. 이제는 은퇴하고 치매이신 친정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더 바쁠 친구에게 주먹밥이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합정역은 그다지 친숙하지는 않습니다. 어반스케치를 해보겠다고 그림 그리러 다녔던 3개월 정도 갔던 곳입니다. 합정역에서 친구랑 만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간병하는 친구가 낼 수 있는 두 시간 정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치매이신 친구 어머니를 초등학교 시절 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으로 단아하고 스마트하신 분이셨죠. 나의 어머니처럼 말이죠. 그런 분들이 이제는 모두 기력은 다하고 정신은 어지러워지셨습니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거죠.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 무겁기만 합니다만 피할 수는 없는거라는 것도 압니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말입니다.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나도 친구처럼 정년 퇴직을 했을테고 치매 어머니 간병은 못할 것이고(이미 치매이셨던 어머니를 보내드린지 5년차입니다.) 아마도 집 값이 어마무시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만 살았는데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마음은 참 우울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올 1년은 서울 구석 구석을 돌아다녀볼까 합니다. 자꾸 티눈이 올라오는 발가락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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