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83
내 스타일의 꽃게탕
이상한 일이 이틀째 이어진다. 보통은 이랬다.
일어나자마자 갑상선호르몬약과 혈압약, 고지혈증약을 먹고
아침은 대부분 간단한 빵 종류를 준비해서 출근 후 학교에서 먹는다.
내 학교 출근은 출근 시간 오십분쯤 쯤 전이고
그 시간에는 아무도 학교에 없다. 나만의 혼밥 아침을 먹는 셈이다.
커피를 만들고 내 책상을 정리하고 그날의 수업을 머릿속으로 준비하면서 먹는 아침이다.
어느 날은 토스트, 또 어떤 날은 샌드위치나 호밀빵, 유뷰초밥이나 볶음밥 조금,
그리고 힘이 없는 날은 지하철역에서 사가지고 가는 야채 혹은 참치 김밥이다.
이런 생활을 족히 15여년은 했던 것 같다.
갑상선 전절제 수술 후 아침마다 호르몬약을 먹어야 했고
약 먹은 후 최소한 한 시간쯤 있다가 밥을 먹는 것이 약의 효율에 좋다해서
시작된 일상 패턴이다.
그리고 열강을 하고 나면(교사는 육체 노동자가 맞다.)
점심 급식은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때때로 간식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학교에서는 맛없는 것이 없다.
집에서는 손대지 않던 것이라도 학교에 가지고 와서 나누어먹으면 무엇이든 맛있기만 하다.
이렇게 간식을 집어먹어도 퇴근길에는 여지없이 배가 고파왔고
아들 녀석의 저녁 준비를 하면서 이른 저녁에 저녁 식사를 마치는게 보통이었다.
어제도 아침 일상은 똑 같았다.
오후에 3학년 야구부 특강까지 연속 3시간 수업을 하고 나니 배가 고픈 듯 하여
학교 냉장고에 숨겨두었던 미니 약과 한 개를 먹었을 뿐인데
퇴근길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요새 내 최애로 등장중인 미니 케잌 조금을 먹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전날도 그랬었다. 연 이틀째 제대로 된 저녁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 녀석이 출장중이니 새 요리를 하기도 싫고(이런 멘탈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의 소화기관의 역량이 더 떨어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이제 퇴직하면 1일 2끼 식사가 패턴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는 오늘 또 일찍 깼다.
오늘은 주말인데 내 취침 AI는 주말이나 공휴일 세팅이 되어있지 않나보다.
아마도 배가 출출하니 한 시간쯤 일찍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어나자마자 미루어왔던 꽃게탕을 끓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식당에서 먹었던 4만원 상당의 꽃게탕을 이기는(?) 내 스타일의 꽃게탕 말이다.
내일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위한 특식으로 준비하려했는데 하루 먼저 준비해본다.
무, 호박고구마, 대파, 양파 그리고 알배기 배추 다섯장을 크게 잘라 넣었고
정성껏 닦은 꽃게를 넣은 후
된장과 고추장을 1 : 0.5 의 비율로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과
비린내를 잡아줄 다진 마늘을 왕창 투여했다.
한소끔 끓여주면서 거품을 걷어내고 맛을 보니 딱 내 스타일이다.
걸쭉과 칼칼 그 사이 어디쯤에인가 국물맛이 있다.
이제 푹 끓이고 먹기 직전에 잘게 잘라둔 부추를 살짝 익혀 낼 예정이다.
이것은 처음 시도인데 어제 부추 김치를 담고 조금 남은 것을 잘게 잘라두었다.
4만원 번 느낌이 드는 아침이다. 시작이 좋다.
오늘은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한강공원의 가을 식물을 관찰하고
옆이 있는 대형 서점에서 관련 책을 읽고 구입하는 생태전환교육 활동이 예정되어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꿩먹고 알먹고라는 것을 알까 모르겠다.
열심히 하는 것을 선생님께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오늘 점심은 행사 참가 학생과 함께한다.
인원수에 따라 음식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한강공원 근처 식당 몇 곳을 답사해두었다.
(이 글을 쓰고 어젯밤 방송된 모 프로그램을 보니 꽃게 오마카세가 나온다. 절대 그것을 보고 한게 아니다. 이때쯤 이 날씨쯤 먹고싶은게 저절로 떠오를 나이이다. 음식에도 빅 데이터가 쌓이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