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84
계획은 철저하게 세우되 변경은 융통성있게 ...
세상일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오늘의 생태활동은 답사까지 다녀왔으니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PLAN B와 C를 준비해두는 일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하루였다.
먼저 계획 변경 첫 번째.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에 도착해보니 우리가 만나기로 한 출구가
드론 행사로 인하여 폐쇄되었음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다. 우리에게는 휴대폰이 있지 않은가?
재빨리 만남의 장소를 1번 출구로 변경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학생들은 메시지를 잘 보았고 시간도 맞추어서 다들 잘 모여주었다.
1학년때부터 이런 활동을 같이 해왔던 학생들인지라 이제 이런 것쯤이야 익숙하다. 후훗
계획 변경 두 번째.
우리가 보러 간 것은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였다.
식물과 공간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디자인 된 식재의 느낌과 다양한 식물을 보러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추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전 일찍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장애이해활동에 대한 부스 운영 등이 이루어져서
불꽃 놀이 행사로 바쁜 여의도 한강공원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과장이다. 여의도공원은 어제부터 난리가 났다고 한다.)
주말 오전 한가하게 한강공원을 즐기려했던 나의 계획과는 다소 차이가 났지만
더 다양한 부스를 즐길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한강공원에서 독서를 해보려 했었으나 빈백에 거의 누운 자세로는 책을 읽기 힘들었고(잠들기 딱이다.)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 리허설을 들을 수 있었으니 얻은 것이 더 많았다.
계획 변경 세 번째.
계획으로는 젊은이들의 로망이라고 하는 한강공원에서의 라면을 먹어보려 했었다.
이번 기회에 늙은 나도 슬쩍 묻어서 먹어보려 했다.
내 사심이 섞인 메뉴 선정이었다.
그런데 이미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라면은 다음에 어느 한강공원에서도 먹을 기회가 많다면서
한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니 양식도 중식도 아니고 한식이라니...
그것도 평소에 자신의 의사를 잘 밝히지 않고 조용히 대세에 따르던 김모군의 의견이라니...
존중해주기로 했다. 의견을 제시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잘 알기에 말이다.
한 정거장쯤 걸어 백화점 식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바다 냄새가 가득한 멍게 비빔밥과 제육볶음, 쭈꾸미와 오징어 볶음을 맛나게 먹었다.
멍게 비빔밥은 역시 그 나이 학생들에게는 호불호가 있었고(이 나이가 된 나도 잘 먹지 못한다. 멍게와 해삼은)
물미역쌈과 해초들에게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았지만
불맛 가득한 제육볶음과 쭈꾸미 오징어볶음은 싹싹 그릇을 비웠다.
내 최애 음식은 바다 냄새 가득한 미역국이었다.
모두가 만족한 한강공원 라면보다 훨씬 나은 계획 변경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계획 변경은 도서 고르기였다.
밥 먹은 백화점 지하에 있는 대형 문고에서 과학과 관련된 책을 한 권씩 고르는 것이었는데
최고 가격을 정해주지 않았다.
조금의 가격 차이로 정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오지 못하는 착한 학생들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이 도서 선정은 어젯밤 문득 생각한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활동에 사용할 소정의 예산인 희망교실 예산을 받았는데 마침 마지막 조금이 남아있었다.
결산보고를 하려면 딱맞게 잔액 0원을 만들어야하는데
책을 사면 분명 그 금액을 분명히 넘어서게 될 것이고
예산을 넘는 것은 내가 보태주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좋은 토요일에 늙은 과학선생님과 한강공원을 걷고
주변의 식물을 살펴보고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멋진 그들에게
계획을 조금 변경하여 조그만 책선물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책은 과학과 조금이라도 연결 고리가 있는 것으로 선택하라는 미션은 주었다.
이것도 훌륭한 계획 변경이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관심거리에 부합하는 책을 골라왔고 아마도 올해가 가기전까지는 읽을 것이다.
갑작스런 계획의 변경으로 원계획보다 더 풍성한 활동이 되었으니 좋았다.
오늘 날씨와 하늘 색 만큼 멋졌다.
이 글은 <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부분일지,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부분에 넣을지
잠시 고민했으나 사진이 멍게비빔밥이라 이쪽 카테고리에 넣었다.
그러나 대부분 나의 글이 그런 것처럼
음식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수업 이야기의 혼합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것이라든 한 가지로 명쾌하게 단정 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