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번째 P군

지금은 알아볼수 도 없을테지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소개할 영재는 나의 교사 1년차 때 만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P군의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로(졸업식이 2월 25일, 첫 출근이 3월 2일)

학생들을 만났으나 또렷이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는 학교에서 실험을 거의 하지 못한 세대였다.

한 학급당 학생 수도 많았고-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50명은 족히 넘었을 듯하다.-

실험기구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실험을 하겠다는 선생님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과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공부 좀 한다하는 친구들이 모두 이과를 선택해서 따라간 것은 아닐까?

과학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대학 4년간의 공부보다도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의 수업을 준비하면서였고

이제야 과학의 큰 흐름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교직 첫 해에 만난 P군은 아마도 꼭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을 읽고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첫 수업부터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열심히 공부하던 그는

실험시간에는 더욱 우월한 능력을 발휘해서

실험기구를 조작하고 실험을 진행하며

그 과정을 같은 조 친구들에게 알아들기 쉽게 설명까지 해주는 멋진 학생이었다.

실험기구도 없는 실험실에서 교사인 나도 해본적 없는 실험을 어렵게 준비해두었는데-실험을 함께 준비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려한다.-

P군은 나의 의도와 교과서의 의도를 모두 파악하고

실험이 잘 안될 때는 대체 기구까지 고안하여 수행하는 보기드문 중1이었다.

그 아이의 공부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었고

그 아이에게 흠잡히지 않으려고 실험을 준비하고

그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수업 내용을 반복하여 살펴보았다.

초임교사로서의 나의 역량을 높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학생이었다.

중1이 지나고 수업 시간에는 만날 수 없었으나

그 당시에 유일했던 대전 소재의 영재학교로 진학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의 첫 학교는 주변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었고

이곳에서 영재학교에 진학한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P군이 1학년이었을 때 이미 영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자신이 아는 것을 친구들과 기꺼이 나누어가지려 하던 성품의 소유자. 영재성과 인성을 함께 갖추고 있었던 보기 드문 P군. 수학과 과학을 즐길 줄 알았던 자그마한 체구, 동그란 얼굴, 자신감에 넘치던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keyword
이전 03화내가 만난 영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