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 5분...
직업상 3월이면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성적보다 인성이 물론 더욱 중요하지만 학생은 직업이 공부이니만큼 수업 시간에 성실하게 참여하면 성적은 어느 정도까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것은 진리이고 상식이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으나 성적은 나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것은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3월 2주차쯤 되면 공부를 잘하겠다 하는 학생을 대략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실험보고서를 보면 된다. 다른 교과라면 노트를 보면 될 것 같다. 요새는 노트 필기도 하지 않고 태블릿으로 정리하는 수업도 있으니 그러면 태블릿 정리본을 보던가, 책 정리한 것을 보면 된다. 노트 정리는 받아쓰기가 아니다. 그날 이해한 것을 내가 다시 봐도 알 수 있게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글씨를 예쁘게 쓰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지만 자기의 필기내용을 자기도 못 알아보게 쓰면 그것은 정리한 것이 아니다.
나보다도 훨씬 노트 정리를 잘하는 학생도 물론 있다. 첫해 가르쳤던 J는 어떻게 그렇게도 노트 정리가 완벽한지 따라갈 사람이 없다. 내가 예시로 든 것까지 정리하고 잘 이해안되는 부분은 그림을 그려서 정리해놓은 그의 노트는 가히 국보급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잘 안 듣고 필기를 잘한 친구 노트를 빌려서 공부한 다는 것은 사실 면목 없는 일이다. 그 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 친구의 노력을 공짜로 받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J 자리 옆에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서곤했다. 지금처럼 복사기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때 그의 노트를 한번 보는 것은 고득점의 지름길이었다. J는 지금 소아치과 병원장이다. 학생 때 노트를 정리하듯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환자와 환자의 차트를 관리할 것임에 틀림없다. 어른을 다루는 치과보다 어린이를 다루는 치과가 2배는 더 힘들게다. 어린이는 백발백중 우느라 정신이 없을 거고 보호자는 이를 달래느라 당황하고 힘들거고 그 와중에 치료를 해야 하는 소아치과 의사는 귀도 아프고 손에는 힘도 들어가고 정신은 쏙 빠질 것 같다. 50명 정도가 되었던 그 당시 교실에서, 떠들고 잘 듣지 않고 장난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오롯이 집중하며 수업을 듣고 노트 필기를 빛나게 하던 J의 내공이 소아치과 의사가 되어서도 발휘되고 있을거라 믿는다. 그나저나 그 노트들은 다 어디갔을까? 가보로 물려주어도 충분할 만큼 멋졌고 그 이후로도 나는 그보다 요약 정리를 더 잘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부모님들은 그들의 노트와 교과서를 한 번 살펴보기 바란다. 5분 안에 내 자식은 어느 과목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느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는 나도 내 아들 녀석의 노트와 교과서를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살펴보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을 들추었을 때 드러나는 가슴아픈 사실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게다. 많이 비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