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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31

나의 먹거리 월드컵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로 나의 정년퇴직 축하와 위로의 모임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그 동안 하루에 한 끼는 맛난 먹거리와

즐거운 수다 자리가 있었던 셈이다.

벌크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이제 슬슬 힘들어지는 시기가 다가오는 듯

(다이어트도 2주 정도하면 정체기가 나타난다.)

아니면 컨디션이 저조해지는 것인지(두가지 다 일 확률이 크다)

딱히 오늘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점심으로 맛난 것을 먹어야 힘이 날 듯 했다.


2년간 영재교육원 운영의 업무를 맡아

파견 근무를 했던 낙성대역 융합과학관에서 열리는

K-STEM 정책포럼을 들으러 나서는 길에

고속터미널역 맛집으로 소문난 푸드코트를 가보려 마음먹었다.

고속터미널역에는 10번쯤은 가본 것 같은데 이곳은 처음 가본다.

검색을 해보니 끌리는 먹거리가 꽤 있다.

갑자기 내 식성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먹거리 월드컵을

자체 진행해보았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 쉽다. 짜장면이다. 짬뽕이 더 양이 많고 맵다.

오무라이스냐 볶음밥이냐 : 난이도 중인데 볶음밥이다. 불맛 나는 볶음밥은 대부분 실패가 없다.

곰탕(설렁탕, 도가니탕) 이냐 육개장이냐 : 난이도 중상인데 컨디션이 나쁠때는 육개장이 더 끌린다.

민초냐 반민초냐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민초다. 민트맛은 나에게는 치약맛과 같다.

오늘의 선택은 순대국이냐 쌀국수냐 였다. :

난이도 최상이다. 이것은 두 식당을 왔다갔다해보고 끌리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오늘은 순대국이었다. 아들 녀석이 꼽은 최고의 순대국집이라는 곳이 그곳에 분점이 있었다.>


요사이 식당에는 태블릿이나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늘의 순대국집이 그랬다.

그런데 고속터미널이라는 지리적인 위치도 그렇고 순대국이라는 메뉴도 그렇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2/3는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었다.)

디지털 기기 활용 주문에 다들 쭈뼛거리고 두려워하는 순간이 있어 보였다.

나의 5년 뒤를 보는 듯 하다.

그래도 이 곳은 직관적으로 잘 찾을 수 있게 구성해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이 있다.

식당이 잘 되는 곳일수록 직원들은 바쁘고

어르신들의 주문을 대행해 줄 여력은 없다.

우체국이나 은행을 방문하는 사람도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다 온라인으로 처리하니 말이다.

아무리 AI 의 시대라 해도

디지털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불편해지는 경우는 최소화했으면 한다.

나의 미래에 디지털기기 때문에 무언가를

잘 못하게 되면 참으로 울적할 것 같다.

오늘의 정통순대국은 맛났고 든든했고

만원의 행복이라 충분히 불리울만 했다.


2년동안 내가 근무했던 그 곳은 여전했고

길 건너의 농업교육센터는 이제 자리를 잡고

잘 관리되고 있었고

오늘의 행사는 정시에 시작했고(교육감이 참석하는 행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후배 장학사들, 후배 파견 선생님,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천체 관측의 기쁨을 주었던 주무관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퇴임 인사를 나눌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난 것 같다.

다음 주부터는 드문 드문 스케쥴이 있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으려 한다.

나는 긴장이 풀리는 순간 매번 크게 아픈 스타일이다.

제 2의 인생 출발이라고 모두에게 축하받은

3월 첫 주를 아프면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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